경주임란의사 倡義碑文

조선 선조25년부터 7년동안 이 땅을 병화의 도가니로 넣었던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치욕적인 전란이었다.

이로 인하여 우리 민족은 인적 물적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국력이 쇠진되어 그후 40여 년만에 또 다시 일어난 병자호란마저 극복하지 못한 채 근 반세기 동안 기한(飢寒)과 질병 속에 허덕이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우리 경주는 가장 문물이 번성했던 신라의 고도이며 영남의 웅진으로서 적의 주력부대가 목표로 삼았던 요로였기 때문에 그 어느 지방보다도 가장 먼저 많은 인명의 사상과 재산의 분략을 당해야만 했다.

이 해 4월 14일 20여만의 대병을 동원, 부산포에 상륙한 적은 일거에 동래성을 함락하고 언양을 거쳐 경주성을 점령하니 바로 4월 21일의 일이었다.

그들의 본진은 영천을 지나 북진을 계속하고 경주에 유둔한 잔당들이 후속되는 증원병과 합세, 갖은 살육과 자행하자 분기에 찬 우리의 선조들은 백척 간두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충의의 일념으로 창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어나 결사항쟁에 나섰다.

그리하여 6월 9일 문천에서 회맹, 일사보국의 결의를 다짐하고 8월 21일 관군과 함께 경주성 탈환을 위하여 500여명의 전사자를 낸 서천대전을 치른 뒤 드디어 9월 8일 경주성을 복원하니 이때 경주인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충용한 의사들은 가족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아니하고 영천복성전, 팔공산회맹, 화왕산회맹 등에 연이어 참가하여 신명을 다 하여 항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정유재란이 일어나 서울을 향하여 북상하던 적이 직산에 이르러 명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하하면서 경주에 들어와 저지른 그 만행은 실로 극에 달했다.

살육과 약탈은 물론 아직 성중에 남아있던 관아의 건물과 유물, 유적들을 모조리 방화 또는 타파하니 분황사가 30만근으로 만든 금불상과 함께 불타고 9층 고탑이 파괴된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에 동요되거나 굴하지 않았다. 끝까지 적을 추적하여 울산 도산에 둔거 한 적을 조명연합군과 함께 공격하며 혈전을 계속했다.

충의로운 의사들은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하면서도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모든 전장의 선봉에서 싸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란을 극복하고 향토를 보전하는데 큰 공적을 남기셨다.

아! 우리 어찌 이 분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400년이 지난 지금 때 늦은 감이 없지 아니하나 여기 이 8척정비에 경주출신 의사는 물론 경주전약에 참전한 지휘관 및 각 읍 의사들의 방명을 정성껏 새기고 아울러 별도의 창의록에 그 사적을 소상하게 수록하여 자손만대로 추모하며 귀감을 삼으리라.

1997년 10월   일   경주시장 이원식, 경주임란의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