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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a pilgrimage
사적지순례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14-08-25 (월) 18:43
홈페이지 http://www.hakseong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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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내가 살아가는 세상"블로그 운영자의 "석계서원,근재공고택" 탐방기

부산과 울산을 오가는 도로에 항상 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학성이씨 근재공고택’

울산 친정을 가는 길에 기어코 들러보게 되었다. 


 

 

 

여기서 강을 바라보려고 했다면...저 담장은 조금 넌센스가 아니였을까..

재현했다면... 아마도 여기엔

저어기 독락당처럼 담장 창문이라도 내었어야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줄까..크레용이라도 가져와서...그려주기라도...

 

 

 

일반적인 형식이 아닌 조금은 특징이 있었다.

나로서는 이것이 좋다나쁘다라고는 판단할 수있는 안목은  없다

아...이곳은 이런 형식을 취했구나 ...이정도

 

석계서원.

 

667명 구한 '조선외교관'

예선생

일본 쓰시마 이즈하라.

조선시대 통신사로서 40여차례나 방문. 군수가 외구에 붙잡혀 쓰시마까지 가서 데리고옴

계해조약 체결주도..조선인 포로 667명을 귀한...

대의명분으로 타이르고 실리로 달래면 왜인을 따르도록 했다.

 

울산시역에서 보기드문 조선시대에 건축된 서원으로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 17호로 지정되었다.

 

 

 

석계서원 출입문이 돌출된것이 아님이

양쪽 담장을 감싸면서 들어서야 한다는 점이 

상당히 다른 인상을 갖게했다.


 

 

 

이곳은

앞에 보이는 산에서 바람이 불어와 동네를 위감고 돌아가기 때문에

상당히 춥고 여름엔 선풍기가 없어도 지낸다고

석계서원 옆에 사시는 분이 자랑하신다.

다른지역보다 5도정도 낮다고?

 

 


 

 강좌시객 가운데 제 1인자로 꼽혔던 반계 이양오 선생의 문학비도 세워져 있었다. 


 

 

 

  석계서원에서 근재공고택으로 옮겨가는 중

버스를 만났다.

 

  

 

마침

이곳을 관리하는 분인듯한 분이 석계서원을 들렀을 때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았다.

석계서원을 들러 고택에 들어섰을 때 이분이 나타났다.

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해설사처럼... 덕분에 기록에 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고택은 조선 영조 41년 근재 이의창 이 세운 학성이씨 서면파 종택이다.

 고종때 한 차례 고쳤고. 1934년 대대적으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의 구분이 뚜렷하고 사당도 갖추고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 종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툇마루가 있는 사랑채는 정면 3칸 안채는 정면 6칸 기둥은 사대부 집에서는 보기힘든 원형이다.

그리고 뒷마당이 넓은것도 눈여겨 볼점이다.

안채 정침에서 보면 대문쪽 방향의 조산인 벼락띠산 회야강건너편 산. 이 보이도록 집을 지어 풍수설을 따랐다고 한다.

또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산이 안대로서는 그만이다.

눈맛을 새롭게 한다. 이런 안복을 갖기도 결코 쉽지않은 터 처음 집터를 잡은 이의 안목 높음에 감탄...

 

 

일제 강점기 이후에 많이 쇠락한 것은 학성이씨 문중사람들이 1919년 3.1독립운동에 따라

인근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의 남창만세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나라사랑 정신이 투철했던 시조 충숙공 이예 선생의 후예로서의 자존과 긍지를 이었던 것.

 

 

 

수양버들이 집을 들어서기전에 반긴다..

아마도 손님들도

이곳에 서서 옷을 여미었을거라...

 

 

 

우물터인가 본데...

제법 넓직한 공간이다.

 

 

 

답답함이 없어보인다...

 

 

 

  

뒷 뜰도 사랑채 못지않게 넓은 마당이 있었다.

건물의 특징마다 공간이 부여되어 있었던 점이

주인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곳엔

제법 나이가 많은 모과나무가 있는데 고사되기 직전인  모습인데도 

 보란듯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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