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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가고싶다

  travel memorys
그곳에가고싶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당신~
그래도 지발 우리 여행 떠나자.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08-01-27 (일)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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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fh2pWz
ㆍ추천: 0  ㆍ조회: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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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 이씨 씨족의 대표적 반촌(班村) 돌내마을

울산에서 예로부터 사람살기 좋기로 알려진 마을 가운데 웅촌면 석천리 돌내(石川)마을이 이름 높다. 울산시내 중심지에서 대략 15㎞정도 거리인데, 전국에 이름난 양반마을인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각각 안동과 경주 중심지에서 떨어진 거리와 비슷하다. 도보로 한나절 거리이니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향촌지배세력과 중앙에서 파견 온 수령과의 관계가 이 거리 안에 절묘하게 녹아 있다.

돌내마을은 국도 7호선을 따라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오복마을 갈림길에서 2차선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하여 동쪽 회야댐 방향으로 가면 만난다. ‘돌내’란 ‘물길이 돌아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돈다’에서 온 ‘돌’을 ‘石’으로 썼으니 뜻을 빌린 이두식 한자표기이다. 마찬가지로 ‘회야강’의 ‘回野’도 ‘돈다’는 의미와 ‘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다.

마을의 지형은 마치 소쿠리처럼 서-북-동으로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회야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 마을 뒤에 솟아있는 노방산이 주산이고, 회야강 건너편에 솟아있는 베락(벼랑)더미가 안산으로 풍수적으로 빼어난 길지로 꼽힌다. 이곳에는 1700년대 중반부터 학성 이씨 서면파를 중심으로 한 씨족마을이 형성되어 울산의 대표적인 반촌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조선 초기까지 울산군 중심부에 거주하였지만 관아와 적당한 거리에다가 충분한 경작지가 확보되는 웅촌지역에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양반마을임을 보여주는 시설이 여럿 있는데,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3호로 지정된 ‘울산학성이씨 근재공고택’과 문화재자료17호인 ‘석계서원’이 있다. 근재공고택은 1765년에 근재공 이의창이 세운 집으로 울산에 몇 남아 있지 않은 양반종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마을이 많이 쇠락한 것은 학성 이씨 집안 인물들이 독립운동에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숙공 이예를 모신 석계서원은 마을 앞 지방도에 면해 있다. 정조 6년(1782년)에 이곳으로 옮겨와서 1860년에 석계서원으로 격상되었다가 고종 5년(1868년)에 철폐되었다. 그 후 1915년에 경수당과 필동문을 중건하였고, 2000년 11월 문화재로 지정돼 2004년 4월 지금 모습으로 중건되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14/2007101400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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