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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an ancestor
자랑스런 선조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4-11-26 10:06
https://goo.gl/XXr5pd
ㆍ추천: 0  ㆍ조회: 3990    
독립운동가 용락(李龍洛)선조
 

이용락(李龍洛)

1897. 8. 3~1972. 6.22

경북 울주

3.1운동

애족장(90)

경상남도 울주(蔚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온양면 남창리(溫陽面南倉里)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으며, 「삼일운동실록(三一運動實錄)」을 저술하였다. 그는 3월 1일 서울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이수일(李樹一)로부터 서울의 상황을 전해듣고, 이수락(李壽洛)·이희계(李希季)·이쾌덕(李快德)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던 중, 4월 4일과 5일에 걸쳐 전개된 인근 하상면 병영리(下廂面兵營里)의 독립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4월 8일의 남창리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4월 7일 동지들을 그의 집으로 불러 밤을 새워가며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는 4월 8일 아침 일찍 태극기를 몰래 지니고 남창리 장터에 나아가 장꾼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오후 4시경, 장꾼이 더 이상 모이지 않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수백명의 장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를 따라 수백명의 장꾼들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본 군경은 공포를 발사하고 이수락·이쾌덕·이희계·이쾌경을 체포하였다.
이때 겨우 몸을 피한 그는 재빨리 동리사람 윤두찬(尹斗讚)이 경영하는 포목상으로 달려가 광목 4자를 얻어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기를 만들어 장대에 매단 후, 다시 장터로 나와 그것을 흔들면서 더욱 기세를 떨쳤으나, 일제의 무력행사로 말미암아 해산되었다. 이날 오후 11시경에 체포된 그는,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1943년부터 8년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수집하여 「3·1운동실록」이라는 책을 펴내어 민족운동을 후세에게 전승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09·210·211·3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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