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없음9
내용없음10


회원등록 비번분실
문중원이 네이버로 로그인 하는
경우 My페이지 회원 등록정보에서
상세정보를 입력해야 문중회원으로
승급되어 제한자료 열람이 가능함
선조의발자취

  an ancestor
자랑스런 선조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4-03-29 14:32
https://goo.gl/XYqMz1
ㆍ추천: 0  ㆍ조회: 3371    
선조의 발자취


가선대부행경상좌도 수군절도사공 종실

조선왕조 실록에서의 수사공 종실

선조 자취의 간략한 설명

대표적 인물

 

가선대부행경상좌도수군절도사공 종실
 자료 : 울산문화원 "선조 사적 탐방기" 발췌


공의 휘는 종실(宗實)이고 鶴城人으로 忠肅公(충숙공) 이 예(李 藝)의 子이다.
임란 병화로 문헌이 소실되어 생졸년과, 배위도 부전하다.


이조실록 중심으로 공의 사적을 살펴본다.
세종조에 대마도 정벌에 참가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419년 충숙공이 중군병마부사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할 때 부친을 따라 부자가 참전한 것 같다.

1459년 (세조 5년) 첨지중추원사 송처검을 통신사로, 행호군 이종실을 부사로 삼고 종부시 주부 이 근을 서장관으로 하여 국서와 예물을 가지고 일본국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460년 (세조 6년 1월 3일) 통신사 송처검이 데리고 갔던 선군 한 을이 대마주 태수 종성직(소오 모리 쇼꾸)과 수호대관 종우마조성직(소오 우마스께 모리나오)의 서계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신사 송처검과 부사 이종실과 서장관 이 근 등 100여인이 세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10월 8일 (1459년) 새벽에 일본국왕 사신의 배 2척과 대마도 왜선 2척과 함께 출발하였으나, 그날 낮에 풍랑을 만나 송처검, 이 근 등이 탄 배는 표류하여 간 곳을 알지 못하고, 이종실 등 90여인이 탄 배는 급류를 만나, 전복하여 패몰하고 이종실등 5인은 목판을 부여잡고, 표박하여 또한 간 곳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臣(한을 지칭)은 널판자 하나를 휘어잡아 죽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음날  대마도에 표류하여 도달하였으나, 춥고 굶주려 빈사 지경이었는데, 도주 종성직에게 고하여 약이 되는 음식으로 돌보아 줌을 받았습니다.

또 옷과 갓을 주고, 섬에서 여러달 동안 머물러 있게 하다가, 피고여문(히꼬 조오몽)을 시켜서 데리고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고 아뢰었다.

임금이 이를 애도하여 왕세자가 올리려는 잔치도 정지시키고 전지하기를, "내가 한 을의 말을 듣고서 갑자기 조치할 방도가 업다. 그러나 조관을 보내어 시체를 수색하고 겸하여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번호     글 제 목 작성일
10 독립운동가 우락(李宇洛)선조 2004-11-26 10:06
9 독립운동가 용락(李龍洛)선조 2004-11-26 10:06
8 독립운동가 수락(李壽洛)선조 2004-11-26 10:05
7 독립운동가 재락(李在洛)선조 2004-11-26 10:04
6 이인중선조 2004-04-08 08:58
5 이양오선조 2004-04-07 23:24
4 석천리 학성이씨 근제공 종택 2004-03-31 19:20
3 이 휴 정 2004-03-29 15:26
2 사적지 순례 2004-03-29 15:00
1 선조의 발자취 2004-03-29 14:32
12

Copyright © 2004.3.16~ by www.hakseonglee.com, All rights reserved. 학성이씨곡강파(판사공파)문중 Mail 5061472@gmail.co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