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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chungsukgong
충숙공할아버지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19-02-07 15:58
홈페이지 http://hakseonglee.com
Link#1 articleView.html?idxno=680726 (Down:2)
https://goo.gl/Jz8R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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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울산실록]조선시대 울산의 부평~굴화~간곡 역로, 現 국도 7호선과 겹쳐
 
8. 울산의 옛길과 신설 국도7호선
 
   
▲ 1832년(순조32) 무렵 편찬된 『경상도읍지』 속 울산의 고지도. 오른쪽 위 부평역(富平驛)과 병영(兵營), 왼쪽 중간 굴화역(堀火驛)과 간곡역(肝谷驛)을 연결하고 남하하는 빨간색 도로는 지금의 국도7호선과 겹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울산지역 3개 驛 기재
경주 구어역에서 기장 아월역까지 이어져
예나 지금이나 부울경 주요 간선도로 역할

국도7호선 신설구간 이예路·통신사路 명명
조선시대 통신사 동선과 겹치는 43㎞ 구간
이예 선생이 거쳐갔던 길, 역사적 의미 커


휴대폰 포털사이트를 켜고 한반도 지도를 보자. 부산 울산 서울 평양 등 큰 도시들이 점과 점으로 나타난다. 두 손가락으로 지도를 조금씩 확대해 보자. 도시를 선으로 연결하는 도로망이 나타난다. 혈맥이 장기를 연결하여 몸을 이루듯이, 길은 도시를 연결하여 사회를 유기체로 만든다.

길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존재했다. 반구대 원시인이 고래잡이 다니던 동선이 길로 다져졌다. 신라 갈문왕은 사랑하는 누이와 함께 길을 따라 울주를 찾았다. 그리고 천전리 바위에 글을 새겼다. 고려 성종은 길을 따라 동경(경주)으로 행차했다. 순행을 마치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화루(지금의 태화루)에 들러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영남대로와 천안삼거리를 거쳐 과거길에 올랐다. 이렇듯 길은 사람과 사람, 가정과 일터, 동네와 관아, 섬과 육지, 도시와 도시, 지방과 서울을 연결했다.

조선시대 울산에는 어떤 길이 있었을까. 왕조실록에 기록된 울산의 길을 찾아보려면 「세종실록 지리지」를 봐야 한다. 「지리지」는 국가와 지역의 역사, 지리, 인물, 풍속 등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을 말한다. 왕조실록에서는 「세종실록 지리지」가 유일하며, 다른 임금의 실록에는 「지리지」가 없다.

 
     
▲ <세종실록-세종실록지리지> 속 경상도 경주부 울산군 부분. 울산의 세 역이 ‘驛三肝谷屈火富平’(붉은 선 안)이라 기록되었다.

 
‘울산에는 이런 저런 길이 있다’라는 식으로 「세종실록 지리지」(이하, 「지리지」)에 기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지리지」에 실린 역(驛)의 정보를 통해 울산의 길을 짐작할 수 있다. 「지리지」는 염포, 개운포, 서생포의 소개에 앞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驛三肝谷屈火富平.’(역이 셋이니, 간곡, 굴화, 부평이다)

중종 때에 간행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는 조금 더 친절하다. 울산군에 간곡, 굴화, 부평의 세 역이 있으며 각각 고을 서쪽 39리, 고을 서쪽 15리, 병영성 서쪽에 위치한다고 기록했다. 간곡역은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굴화역은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부평역은 중구 약사동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 역은 왕조실록 뿐 아니라 『고려사』 『경국대전』 『대전회통』 등 문헌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역의 설치 및 정비와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로는 세 역을 무대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 간곡역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임란 명신 이덕형이 지은 시의 배경이 되었다. 『한음선생문집』에 실린 ‘蔚山途中有懷(울산을 지나는 감회)’이 그것이다. 7언절구 여덟 행의 3~4째 행은 ‘여름날 혼자서 간곡역 다다르니 산길은 풀 덮이고 사람연기 끊어졌네’로 번역된다. 굴화역은 『삼국유사』에도 나타난다. 박제상의 목숨과 바꾼 미해 왕자의 귀국 소식을 들은 눌지왕이 백관을 굴헐역으로 보내어 맞이했다는 것이다. 굴화는 예로부터 굴불, 굴벌, 굴헐로도 불리웠으며 굴헐역은 즉 굴화역으로 풀이된다. 부평역은 『성종실록』 1476년 1월26일자 기사에서 기쁜 소식의 현장으로 등장한다. 역 운영을 위한 노동력으로 징발되었다가 방면된 사람 중에 물금이란 이름의 울산인이 있었다는 사연이다.

역은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중앙의 국가권력을 지방에 연결하며 물류의 기능도 담당했던 교통·통신 시설이다. 『삼국사기』에는 소지 마립간 때에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관용도로를 수리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역 제도는 고려와 조선에서 더욱 발전하였으며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시 전국에 516개 역이 있었다. 역마는 역의 주된 운송수단이었다. 역마는 용도(승마 혹은 운반), 크기, 상태에 따라 세분되었으며 마패의 규정에 따라 차등 있게 제공되었다. 임란 이후 쇠퇴하기는 했으나 역 제도의 기본 체제는 1896년(고종33)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경인선 개통과 함께 노량진역과 제물포역이 설치되고 역마가 철마로 대치된 것이 그로부터 3년 후인 1899년이었다.

역과 역을 잇는 길을 역로(驛路)로 불렀다. 역로는 국가의 교통·통신·군사·물류를 위한 기반시설이었고, 조정은 그 유지·정비에 큰 힘을 기울였다. 「지리지」에 의하면 간곡역은 아월역(기장군 정관읍 월평리)을 거쳐 부산으로, 부평역은 구어역(경주시 외동읍 구어리)을 거쳐 경주로 연결된다. 조선시대에 울산과 양산은 모두 경주부 소속이었다. 기장현과 동래현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에서 울산, 양산을 거쳐 기장과 동래로 향하는 구어역-부평역-굴화역-간곡역-아월역의 역로는 당시 부울경 지역의 주된 간선도로였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조선에서 역로의 체계는 오랫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1832년(순조32) 무렵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실린 울산의 고지도를 보자. 우상단의 경주계(慶州界)에서 두 갈래 길이 남하하여 지금의 울산공항 근처에서 만난다. 오른쪽 길은 지금의 동해안로(국도31호선)와 겹친다. 왼쪽 길은 지금의 산업로(국도7호선)와 겹치는데, 바로 위에서 살핀 역로에 해당한다. 역로는 북쪽의 구어역을 출발하여 동천(東川)을 따라 내려가다가 부평역(富平驛)과 병영(兵營)을 만난다. 읍(邑), 사직단(社稷壇), 오산(鰲山)을 지나 굴화역(堀火驛)을 만나 두 갈래로 나뉜다. 서진하는 길은 지금의 울밀로(국도24번선)와 겹친다. 남진하는 길이 역로인데, 율현(栗峴: 율리)를 거쳐 간곡역(肝谷驛)에 닿으면서 다시 둘로 갈라진다. 서진하는 길은 김신대산(金信臺山·남암산) 골짜기로 가며 지금의 삼동로(지방도34호선)와 겹친다. 역로는 서창(西倉), 월라산(月羅山·용천산)과 기장계(機張界)의 아월역을 거쳐 동래로 이어진다.

고지도를 현대 지도와 나란히 놓고 보면, 구어역-부평역-굴화역-간곡역-아월역의 역로는 대체로 지금의 국도7호선과 겹친다. 국도7호선의 일부인 경주의 산업로가 울산의 산업로로 연결된다. 그리고 북부순환도로, 대학로, 웅촌로로 이름을 바꾸며 양산의 웅상대로에 연결되고, 다시 부산의 중앙대로가 되어 부산항의 자갈치에서 끝난다.

인구증가와 산업발전에 대응해 국도7호선과 나란히 달리며 그 교통량을 흡수할 신설구간이 건설되고 있다. 울산 북구 중산동에서 부산 기장군에 이르는 43㎞의 자동차 전용도로다. 북쪽 끝 중산동-성안동 9㎞와 남쪽 끝 기장군 정관읍-양산시 동면 6㎞는 이미 개통되었다. 그 사이의 28㎞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에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도로는 ‘도로명’에 덧붙여 ‘노선명’이라는 별명이 주어진다. 신설구간이 개통되면 산업로, 북부순환도로, 대학로, 웅촌로는 국도7호선이라는 별명을 반납하고 도로명으로만 남게 된다. 국도7호선 신설구간의 도로명은 작년 10월26일 행정안전부 고시(제2018-67호)에 의해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43㎞ 중 울주군 구간인 옥동-웅촌 13㎞는 기존의 농소-옥동 17㎞와 동일하게 ‘이예로’로 명명하고, 양산-기장 구간인 13㎞는 통신사가 지나갔던 옛길을 기리고자 ‘통신사로’로 명명한다.” 도로명이 행정안전부 장관 명의로 고시된 것은 신설구간이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등 복수의 광역지자체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시대통신사현창회 수석부회장

국도7호선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이며, 아시안 하이웨이(AH)의 55개 도로망 중 하나다. AH는 유엔 산하기관인 ESCAP의 주도로 아시아 32개국을 연결하는 14만여㎞의 도로망이며, 현대판 실크로드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를 지나는 도로망은 2개(AH1 및 AH6)인데, 각각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7호선을 활용한다. AH1은 부산-서울-평양-신의주를 거쳐 중국과 터키 이스탄불로 연결된다. 국도7호선은 부산-양산-울산-포항을 지나 강원도 고성군에서 멈추는데, AH6은 이를 연장하여 원산-청진을 거쳐 시베리아와 모스크바로 연결된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도7호선의 신설구간 43㎞가 ‘이예로’ 및 ‘통신사로’로 명명된 것이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총연장 416㎞의 10%를 넘어선다. 조선시대에 서울을 출발한 통신사는 문경을 거쳐 구어역-부평역-굴화역-간곡역-아월역의 역로를 따라 부산으로 나아갔다.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서 40여 회 일본에 파견되었던 이예 선생도 이 길을 따라 일본으로 갔다. 이 역로와 동선이 겹치는 국도7호선 중 43㎞가 ‘이예로’ 및 ‘통신사로’로 명명된 것은 참으로 귀한 성과라 하겠다.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시대통신사현창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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