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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chungsukgong
충숙공할아버지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14-09-21 00:45
홈페이지 http://hakseonglee.com
https://goo.gl/cvRLGo
ㆍ추천: 0  ㆍ조회: 2919    
Re..2010년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이예 글짓기 공모전 최우수상

2010년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이예 글짓기 공모전 최우수상

외교통상부는 올해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이예'를 선정 후 그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글짓기 공모전을 실시하였습니다. 최우수상 작품을 여기에 소개해드립니다.

 

 

 

'장인정신’이 빚어낸 조선 최고의 ‘소통장인’, 이예

 

                                                             

 "미국 외교관들은 이제 줄무늬 양복뿐 아니라 카고 팬츠도 입어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이 수립한 새로운 글로벌 외교전략의 핵심을 표현하며 한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말은 “전 세계 미 외교관들은 민심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 당국자들끼리 만나는 표면적 외교에만 그치지 않고, 각 나라의 지역사회와 깊숙이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나라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장관 뿐 아니라 시골 어르신도 만나야 하기에, 양복 외에 카고 팬츠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이 화두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 국가와 국민간의 소통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국가와 국가간의 소통인 외교문제는 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빛나는 소통의 힘으로 어려운 외교적 과제를 해결했던 조선시대의 외교관 이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예는 조선 전기에 활약했던 통신사였다. 통신사란 요새말로 하면 외교관을 지칭하는 것이니, 그는 조선 전대의 뛰어난 외교관이었던 셈이다. 외교관으로서 대일본 외교 분야에서 이룩한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이예는 40여차례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다. 그가 찾아온 조선포로가 667명에 달하고, 문인제도를 확립하고 계해약조의 정약을 주도하는 한편, 세종임금의 명을 받아 대장경을 일본국왕에게 전달하고 일본의 자전 물레방아와 무쇠로 만든 대포를 조선에 들여오는 등 조선, 일본 문화교류에 큰 업적을 남겼다. ‘신냉전시대’로 지칭될만큼 국제정세가 급박하고, 그만큼 많은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는 현재에 이예의 외교능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예의 외교적 능력을 배워, G20의장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마도는 조선땅?

 

오늘날 한일관계의 ‘복잡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과거사청산을 둘러싸고 미묘한 대립관계가 모든 외교문제에 끼어들어 ‘이중적 민족성’을 강요하는가하면, ‘독도’를 중심으로 하는 영유권문제는 한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독도의 날’을 만들자, 한국 정부는 ‘대마도의 날’을 제정함으로써 응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대마도에 직접 살면서 ‘대마도는 조선땅’을 외쳐도 될만큼 대마도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외교관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예다. 이예가 활동했던 조선 초기에는 대마도 왜구들의 노략질이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대일교섭의 주요 목표는 왜구의 금압이었는데, 이예는 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여러차례의 일본 사행을 통해 일본의 경제와 교통, 산업을 조선에 소개해 조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태종대에 12회에 걸쳐 조선의 사절로서 일본에 파견되었고, 세종대에는 모두 7회에 걸쳐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본과의 수호 및 피로쇄환, 그리고 왜사의 통제를 위한 외교적인 교섭에 크게 기여했다.

 

 

-이예의 ‘통치자와 맞먹는 외교적 리더십’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 보면, 통치자가 피정복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방법으로 ‘일정기간 피정복지 내에 직접 살면서 통치할 것’이라는 방법이 나온다. 그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직접 얻기 위해서는 거주지내에 동고동락하면서 빈번한 접촉을 통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예는 이 방법을 몸소 실천하면서 ‘통치자와 맞먹는 외교적 리더십’을 펼쳤다. ‘머리’로만 외교전략을 짜는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 ‘발’로 뛰는 ‘현장가’였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진실된 외교에 감읍한 일본의 지도자 ‘’는, 조선 정부가 도적질한 일본인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이예에게 내렸을 때, ‘자신의 친척만은 압송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지만, 되려 이예에게 설득당해 자신의 친척을 포로로 보낸다. 그만큼 이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장’을 사로잡은 이예의 비법은 바로 ‘소통을 통한 신뢰의 구축’에 있었다.

 

-빛나는 ‘장인정신’

 

 이예는 71세의 나이에 다시 한번 대마도에 원정을 나간다. 그는 당시 조선의 평균연령에 비추어볼 때 매우 고령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청’해서 대마도 체찰사로 먼 길을 떠난다. 이때 그가 세종임금에게 아뢴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신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이 섬에 출입하여 이 섬의 사람과 사정을 두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신이 가면 저 섬의 사람들이 기꺼이 만나볼 것이며, 누가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현장가’로서의 그의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돋보이는 것은, 대일외교에 대한 그의 책임감이다. 당시 그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진정 대일외교를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의 대마도 원정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30대에 조난을 당해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고, 60세에는 바다에서 왜구에게 약탈당하고 목숨을 겨우 부지했다. 이런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헤쳐왔음에도 그는 71세 고령의 나이에 ‘자처해서’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다. 자신이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판단 하에서 행한 일이다. 그는 한마디로 ‘일본통’이었다. 이예로부터, 이러한 전문성은 단순히 머리로만 뛰어서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전문성은 자연스레 얻어진다. 이것이 바로 ‘장인정신’의 위대함인 것이다. 

 

-허각(슈퍼스타K2 우승자)과 이예의 공통점

 

 

이예는 본래 조선시대의 하급관리인 아전이었다. 아전은 중인신분에 해당한다. 중인은 벼슬에 오르더라도 일정신분 이상으로 오를수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예는 통신사로 중용되었다. 향리에 불과했던 이예가 조정에서 벼슬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적이 그가 향리로 있던 울산에서 군수 이은을 비롯한 관리들을 인질로 잡아갔을 때, 이예는 자진해서 대마도에 따라가 지극정성으로 군수 이은을 모셨다. 그리고 품에 숨겨갔던 은그릇을 왜적에게 뇌물로 주어 그들의 마음을 사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런 이예의 품성에 탄복한  왜적이 군수와 이예 일행을 풀어준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 그의 외교적 수완과 충성을 가상히 여긴 조정이 그에게 벼슬을 내려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사대부 양반으로서 전문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고, 끝내는 종2품의 높은 벼슬에 올랐던 것이다. 그가 이러한 특별한 ‘스토리’로 인해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는 모습은 며칠전 케이블TV스타육성프로그램인 슈퍼스타케이2에서 최후의 1인으로 선정된 허각의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중졸의 학력과 작은키,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인 허각이 슈퍼스타로 선정된 것을 두고 언론은 ‘평범한 사람의 기적같은 스토리’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허각의 스토리는 결코 기적이 아니다. 이예가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은 것이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이예와 허각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하지 않은 기본 실력’, 즉 ‘자기분야에 있어서의 확실한 전문성’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키가 작고 외모가 평범하다 한들, 허각의 본분은 ‘노래를 잘하는 것’이다. 출연자 중 가장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던 그가 슈퍼스타가 된 것처럼, 사람을 대하고 교섭하는 분야에 있어 압도적인 탁월함을 보였던 이예가 일본통으로 인정받고 조정의 양반이 되어 통신사가 된 것이다. 이예와 허각에게서 우리는 성공의 키워드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자기 분야에 있어서의 확실한 ‘전문성’, ‘장인정신’이다.

그가 전문성을 축적한 과정은 ‘직접 부딪히기’였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보니 다 잘됐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예다. 그는 ‘책임감과 장인정신’을 통해 ‘전문성’을 체득해 통신사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요새 언론에서 유행하는 말로 ‘사다리’를 탄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이예의 사례에서 ‘공정한 사회’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능력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이예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공정한 사회에 가까워 질 것이다.

 이 외에도 이예의 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먼저 본격 은퇴를 맞은 베이비붐세대의 노후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위를 느끼게 된다. 이예는 나이가 많았지만 젊은 대신들을 제치고 일본 출장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과 함께 쌓여온 연륜을 고려할 때, 그만이 할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함에 있어 ‘경력’은 나이와 함께 쌓이는 경우가 많다. 전격 은퇴를 맞은 베이비붐세대의 경험이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쓸모없게 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가 노인인력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이예는 시사점을 남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의 중요성’이다. 대북, 대일, 대중, 대미 외교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G7 회의가 G20회의가 된 것도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이 의미있는 논의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비행기를 띄우지 않을 것입니다.”

경주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회담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유머인 동시에, 외교적 협상에 이르는 것의 어려움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 하겠다. ‘외교’는 ‘내치’보다 훨씬 복잡한 성격을 띈다. 자국 내 질서에 대한 어느정도 합의가 되어있는 내치와 달리, 외교는 이해관계를 완전히 달리하는 타국과 유의미한 합의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냉전시대, 우리의 외교적 역량은 그 어느때보다도 눈부시다. G20의장국으로서 해내야 할 역할 또한 막중하다. 또한 이는 비단 외교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공유하는 책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모두가 스스로 외교 사절단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으로서, 이예를 본받아 선진한국의 일원이 되겠다는 책임감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책임감은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진실된 미소를 통해 실현될 수도 있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연스레 빛을 발함으로써 이루어질수도 있다. 현대를 사는 개개인 각자의 ‘장인정신’이 세계속의 빛나는 한국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할 것이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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