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ㆍ추천: 0 ㆍ조회: 3292 
|
|
|
대마도 기행문 (충숙공이예공적비 건립 1주년 기념식)
대마도 기행문 (충숙공이예공적비 건립 1주년 기념식)
이창훈(충숙공이예선양회 부회장)
이른 새벽 3시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쉬 잠이 오지 않는다. 원행을 앞두어서 그런지, 충숙공 할아버지의 흔적이 깃든 곳을 참배하러 간다고 해서 그런지,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2시 50분, 자명종이 소스라치기 조금 전이었다.
서울역의 고속철도 승강장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니 훤칠한 어른 몇 분이 서성이며 반가이 맞아 준다. 여러 사람 총중에서도 어딘가 품위 있고 아우라가 풍기는 사람들이 우리 학성 이씨 문중인들이다. 특히 재경화수회 수석부회장인 성환 형님은 가족뿐 아니라 동생 내외와 조카들까지 총출동하였고, 향촌의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는 죽마고우 네 분까지 참가하여 이번 여행을 더욱 빛내 주었다.
모두 27명의 우리 일행이 빠짐없이 도착했고, KTX 기차는 새벽 5시 20분 정시에 서울역을 출발하였다. 집행부의 성환 형님, 태걸 형님과 재욱 조카가 도시락과 다과를 나누어주며 여행의 편의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 준다. 차창 밖으로 박명 속의 고국산천이 참으로 곱다.
청도를 지나며 낙동강의 푸른 물이 우리를 맞아 준다. 이것 역시 경부간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누리게 된 즐거움이다. 기차와 병행하며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은 영남인의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는 저 강의 기슭에서 성장하였고 저 강이 베푼 넉넉한 품속에서 세상이 큰 사랑과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배웠다.
부산역에 내리니 신선한 갯내음이 바람결에 묻어오고 해조음마저 이명처럼 들리는듯하다. 서둘러 국제선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우리 일행 때문에 출항 시간을 연장한 배는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출항이다. 뱃고동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어느덧 오륙도가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작년 이맘때의 대마도 여행과는 달리 이번 뱃길에는 바람이 심하고 높은 파도가 넘실대어 우리가 탄 배를 공중에 띄웠다 내렸다가를 반복한다. 이미 절영도는 아득히 시야에서 멀어졌고 현해탄의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여행이란 것이 어딘지 사람을 들뜨게 하여 술추렴을 하게 되는 일이 많은데 우리 일행들은 아무도 잔을 권하는 이 없이 모두들 좌석에 깊이 앉아 상념에 젖어 있다. 아마도 선조의 유적을 참배하러 가는 후손으로서 지녀야 할 조신한 몸가짐이라고 여겨진다.
멀리 대마도의 북쪽 끝 히타카츠항이 보인다. 마침내 대마도에 도착한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 일행이 맨 처음 당도한 곳이 조선통신사 조난순국비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출발하여 한참을 달려 충숙공의 공적비가 있는 원통사에 도착하였다. 원통사는 대마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조선 전기에 당시 대마도를 통치하던 종씨 가문이 위세를 떨치던 곳이다. 일본으로 오고 가는 길에 이곳을 중심으로 충숙공께서는 대마도에서의 외교 활동을 전개하셨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에 성대한 기념식과 함께 세워졌던 ‘통신사이예공적비’는 의연히 서서 후손을 맞아준다. 먼저 우리 후손들은 기념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멀리 고국에서 가져온 조촐한 음식을 진설하고 우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재경화수회의 태일 회장님이 공적비 앞 제단에 술을 바친 후, 명훈 박사가 짓고 병욱 동생이 대신 읽은 “충숙공 영전에 올리는 글”로 기념사에 갈음하였다. 그리고 한 사람씩 차례로 재배하는 순서가 끝난 뒤, 우리 일행은 둘러서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제야 비로소 술 몇 모금씩을 곁들이며 이번 여행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감회에 젖었다.
기념식을 마친 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양반탈을 원통사 주지스님에게 선물하고는 원통사 경내에 있는 대마도주 종씨 3代의 무덤을 둘러보았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이미 어둠이 내린 이즈하라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그 다음날은 이즈하라의 대마시청 근처에 있는 조선통신사기념비와 수선사, 서산사, 그리고 대마도주 종씨가의 문중묘역인 만송원을 둘러보았다. 만송원은 일본의 3대 묘역의 하나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대단한데, 특기할 것은 종씨 일족 뿐 아니라 에도막부 역대 쇼군들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출항시간이 다가오자 우리 일행은 이즈하라항에서 배에 올랐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심한 너울로 인하여 요동이 심하였다. 나는 몇 번인가를 토하며 몇 시간동안의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것은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이었다. 멀미로 경황이 없는 중에 문득 충숙공 할아버지가 상기되었다. 이 힘든 뱃길을 그 분은 무슨 용력으로 견디어 내셨을까? 대마도까지 뿐 아니라 일본본토의 쿄토까지는 또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43년의 공식적인 외교관 생활 동안 이 뱃길을 왕복하신 것이 40여회. 아마도 그 분으로 하여금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한 원동력은 8세 때 왜구에 의하여 납치된 어머님에 대한 원념(怨念)과 관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납치된 지 20년이 지난 뒤 회례사 윤명을 수행하여 대마도, 일기도, 송포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어머님의 행방을 탐문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하였다. 뜻을 이루지 못한 충숙공께서는 사행 길을 나설 때 마다 몽매에도 그리운 어머님을 생각하며 고통을 감내하셨고 그 사모의 정이 그 분을 고무시켰으리라.
극심한 배 멀미에 시달리며 충숙공의 어머님과 그 분의 한을 생각하며, 참으로 작은 것이지만 나의 이 고통을 충숙공께서 어머님을 그리던 마음과 평생을 멸사봉공하던 행적에 바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져 왔다.
이번 여행 동안 한 가족이 모두 참여한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고, 작년에 바빠서 못 온 분들이 올해는 시간을 쪼개어 참여한 정성스런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더욱 보람된 것은 내년부터는 여행사와의 계약으로 이런 행사를 정례화 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결의하였다는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는 사람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되지만,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곳으로부터 보다 높은 경지로 도약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행사를 통하여 충숙공의 멸사봉공의 정신, 어머님을 사모하는 효심, 그리고 철저한 신분사회의 굴레 속에 이 가문을 명문의 반열에 올린 업적을 생각하며 항상 옷깃을 여며야 하겠다. 나아가 그 분의 얼을 이어 받은 우리 후손은 우선 일가 간에 화목하며 지역사회와 나라를 위해서도 더욱 성실히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20
|
|
학성이씨는 
전체보기
선조의발자취
1168220764.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