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락(사)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몇 년 전 필자는 영천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금호강을 따라 시청 방향으로 접어드니 ‘최무선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아! 최무선이 영천 출신이었구나’라고 혼자서 되뇌었다. ‘화약발명가’라는 단편적 지식 이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인터넷 검색창에서 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고려 말에 영천에서 태어났다. 당시 화약제조 기술은 원나라만이 갖고 있었으며, 현대의 핵무기에 해당할 정도의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최무선은 그들의 기술을 비밀리에 익히고 우리 것으로 소화했으며 화통도감을 만들어 화포를 제작했다. 화포의 진가는 1380년 왜구가 300여척의 선단으로 금강 하구 진포에 나타났을 때에 나타났다. 왜구들은 타고 온 배들을 밧줄로 서로 묶은 다음에 육지로 올라와 노략질을 자행했다. 최무선이 이끄는 100여척의 병선에는 화약이 가득 실렸고 그가 만든 화포는 왜적 선단을 두들겼다. 해적선은 모두 불타고 왜구들은 전멸했다. 

‘최무선로’라는 도로표지판을 통해, 필자는 이러한 최무선의 스토리를 새삼 더듬어보게 됐다. 고려 말 단심가로 유명한 포은 정몽주 선생이 영천의 인물인 줄은 진작 알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위대한 최무선 장군도 영천이 낳은 위인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울산시는 지난 4월 20일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어, 오는 7월에 부분 개통되는 옥동~농소간 4차선 도로의 이름을 ‘이예로’로 심의·결정했다. 충숙공 이예는 중구 태화동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의 통신사였다. 태종·세종 대에 40여 차례 일본에 파견됐으며 왜구에 잡혀갔던 667명의 동포를 찾아왔다. 그는 당시 새 왕조의 안정을 위협했던 왜구 문제를 해결했으며, 문인제도를 정약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하는 큰 외교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왜구에 잃었으며, 두 아들 중 한 분은 대를 이어 통신사로 파견돼 가던 중 대마도 앞바다에서 풍랑으로 순직했다. 울산군의 문서를 관장하던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에, 왜구에 붙잡혀간 군수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 왜구의 포로가 됐으며 결국 군수를 구해 함께 돌아왔다. ‘이예로’로 다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이와 같이 풍부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 
외부에서 울산을 찾는 방문객이 ‘이예로’라는 도로표지판을 만난다면, “아! 언젠가 한번 들은 것 같기도 한데”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울산의 어떤 청년이나 학생이 그렇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예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도로명에 사용되었을까”라는 호기심은 울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울산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외부에서는, 그리고 우리 울산인들 사이에서도, 울산을 공업도시라는 프레임 속에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의 향기와 역사의 깊이는 모자라고, 물질은 풍부하지만 머무르고 싶은 매력은 없는 고장. 그러한 이미지가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다. 울산의 정주환경을 개선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울산 스토리의 불씨를 살려내 문화의 화롯불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울산시가 옥동~농소간 도로 명을 ‘이예로’로 결정한 것은 차원 높은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울산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공모 절차를 거쳤고, 문화·예술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했으며, 이 도로가 지나가는 북구·중구·남구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구 의견을 징구하기도 했다. 또한 인명을 도로 명으로 사용한 국내외 사례도 다각도로 조사했다고 한다. 

20일 도로명주소위원회의 결정은 이와 같이 광범위하게 수렴된 시민여론과 종합적으로 검토된 국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만큼, 울산시민이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도로명 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울산의 공무원들이 시민여론을 존중하는 모습은 자랑스럽다. 600년 전의 이예 선생을 역사책의 페이지에 숨겨놓지 않고 그 이름을 미래의 울산 먹거리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믿음직하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추가적인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울산의 문화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되었으니, 소위 창조경제의 좋은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도로명 결정과정을 높이 평가하며, 울산을 빛낸 위인들의 스토리가 앞으로도 더 많이 발굴돼 우리 울산인의 긍지를 드높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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