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명학 울산대 명예교수 전 울산시 지명위원

울산시 남구 옥동 남부순환도로에서 태화강대공원 십리대밭을 가로지르는 오산대교를 지나, 중구 태화동 유곡동 성안동을 거치고 북구 달천동을 지나 중산동에 이르는 총연장 16.9㎞, 폭 20m의 자동차전용도로의 부분 개통이 금년 7월께에 이뤄진다고 한다. 이에 울산시는 이 도로의 이름을 공모한 결과 100여명이 응모했는데, 그 중에 10건을 선별해 오는 4월께에 있을 울산시지명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한다. 대체로, 어느 지역이나 도시의 명예와 긍지는 그 지역이 어떤 훌륭한 인물을 배출했으며 역사적으로 그 지역이 국가적 발전이나 위기 대처에 얼마나 공헌했는가에 의해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울산은 역사적으로 높이 현창(顯彰)할 인물과 사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묻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

신석기시대에 그려진 반구대암각화가 말해주는 세계 최초의 포경(捕鯨)산업과 조선(造船)산업, 고래를 잡아 그 고기를 염장(鹽藏)하기 위한 제염(製鹽)산업, 아직은 추리에 지나지 않지만 고래 고기를 판매하기 위해 거북껍질로 거래되던 한국 최초의 화폐경제, 어살과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 선진어로법, 굿이나 제례로 보여주는 초기 종교의식 등등이 다 그런 현창할 축제의 요소가 될 것이다. 천전리각석에 나오는 수많은 여근(女根)을 통한 기자(祈子) 민속, 여러 개의 동심원을 통해서 일월(日月)신앙이나 기우제(祈雨祭)나 영성(靈性)기도가 있었을 가능성, 신라 법흥왕시대에 새긴 선후의 두 명문(銘文)에 나타난 신라 왕족의 울산행차와, 그 외에도 곳곳에 새겨진 여러 스님과 화랑의 이름 등등도 모두 축제나 지명으로 되살릴 수 있는 문화요소들이다.

각종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각 시대의 고승대덕과 충신과 효자와 열녀와 의인을 우리는 왜 축제화하거나 도로 이름에라도 남겨 기릴 생각을 하지 않는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던 울산의 수많은 충신들을 충의사에서 지내는 춘추제향만으로 그분들의 혼을 되살릴 수 있겠는가. 그 대표적 인물인 망조당 서인충 장군을 비롯한 임란공신들의 애국충정을 높이는 길 하나쯤 각각 이름 지어드리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는 구명생존을 위해 울산으로 도망왔다는 엄흥도 지사나, 고려시대의 명장인 김취려 장군이나, 고려 말 언양에 귀양 와서 주역과 성리학을 일으킨 정몽주나, 조선 후기 울산에 유학적 문풍을 일으킨 괴천 박창우 선생이나 이휴정 이동영 선생 등등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번에 10개로 선별됐다는 그 도로명이 무엇인지는 다 모르겠으나, 신문에 난 ‘옥소로’는 옥동(남구)과 농소(북구)를 뜻하는 듯한데, 중구가 빠져도 될까 의심스럽고, ‘해오름로’는 희망과 밝음을 높이긴 하지만 이 길이 바닷가가 아니라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외솔로’는 동천강 서편에 이미 있고 병영 동동에는 외솔기념관도 있으니 한 사람에게만 중복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예로’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지명이나 도로명을 지을 때에는 그 이름이 지리적 역사적으로 부합하느냐, 그 땅이나 길의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느냐, 앞으로 두고두고 기릴만한 문화적 요소를 지니느냐 등등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을 ‘이예로’로 명명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예(1373~1445)선생은 울산사람으로,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략을 막고, 40여 년 간 일본을 드나들며 잡혀간 우리 백성 667명을 찾아왔으며, 일본과 교류를 틀어 훗날 조선통신사의 길을 연 최초의 전문 외교관으로, 고려시대의 서희장군과 쌍벽을 이루므로 외교통상부가 이 두 분을 최고의 외교적 인물로 선정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조선통신사의 길이 서울에서 문경새재, 안동, 영천, 경주를 거쳐 모화의 관문성을 통과하고는 농소를 지나 성남동에 있던 객사에서 자고, 이튿날 태화강을 넘고는 옥동과 삼호동과 웅촌과 양산군 웅상읍을 거쳐 부산으로 통하였으므로 지금 닦고 있는 이 도로와 거의 비슷하게 통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이예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중구 태화동 말정(일명 멍정)인데 이 도로가 바로 그 곁을 지나간다는 점이다. 넷째는, 부산시의 조선통신사행렬 축제와 경북 영천에서 행하는 같은 성격의 축제와 묶어 울산도 이 도로와 연계하여 ‘이예 통신사 축제’를 열면 영남권의 대단한 문화관광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울산시지명위원은 물론 시민들이 울산의 인물과 역사와 문화를 다시 찾아 살리는 뜻깊은 일에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양명학 울산대 명예교수 전 울산시 지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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