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산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  입구 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송철호 울산시장, 이두철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선양회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서범수 국회의원, 이선호 울주군수, 이동권 북구청장, 최종규 온양읍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안효근 온양읍 이장협의회 회장, 차재국 내고산마을대표, 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원 등 참석자들이 공적비 제막 후 축하박수를 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산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 입구 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송철호 울산시장, 이두철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선양회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서범수 국회의원, 이선호 울주군수, 이동권 북구청장, 최종규 온양읍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안효근 온양읍 이장협의회 회장, 차재국 내고산마을대표, 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원 등 참석자들이 공적비 제막 후 축하박수를 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울산 출신의 조선시대 통신사이자 충숙공 이예(李藝)의 아들인 이종실(李宗實)의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주군 온양읍 내 고산리 입구 광장(고산리 168-3)에서 열렸다.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선양회 창립준비위원회(이두철 위원장)가 주최한 이날 제막식에는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해 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학성 이씨 문중에 따르면 공적비는 이종실의 혼을 모신 단소(제단이 있는 곳) 바로 앞 도로변 화단에 지난 7월 건립됐고, 비문에는 거쳐 간 벼슬과 실종된 경위 등의 내용을 담았다. 비제 휘호는 이일걸 서예가가 썼다.

이종실은 1459년(세조5) 통신사로서 국서를 받들고 일본국왕에게 파견돼 가다가 대마도 앞바다에서 풍랑으로 순직한 인물이다. 이때 통신사 일행은 정사 송처검, 부사 이종실, 서장관 이근 등 100여명으로 구성됐으나 풍랑으로 배가 부서지면서 실종됐다. 세조는 포구마다 수색해 생존자를 구해냈고 시신을 정성껏 거두도록 각 도의 관찰사에 명했지만 이종실을 포함한 통신사 일행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은 예관을 보내 희생자들의 초혼장(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여 지내는 장례)을 치러줬고,  일본국왕도 교토의 천룡사에 명해 수륙대재를 열어 정사와 부사의 명복을 빌게 한 뒤 사신을 보내 이를 조선에 알렸다. 천룡사에는 지금도 이종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종실의 벼슬은 종3품 대호군이었으며 1749년 '학성지'와 1871년 '영남읍지' 등에는 그가 과거(무과)에 급제해 벼슬이 정3품 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고 돼 있다.

학성 이씨 문중 관계자는 "위험을 무릅쓴 이종실의 충절과 해양을 지향했던 개척정신 등은 울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며 그의 공적을 기렸다.  강현주기자 uskhj@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