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 열려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1 15: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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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이씨수사공문회,공적비에 '울산광역시장' 명의사용 청원
울산시, 자문거쳐 문중과 협의 후 비문 문안 수정
▲ 이종실(李宗實, ?~1459)은 조선 전기 울산 출신 무신으로 본관은 학성(鶴城), 아버지는 대일(對日) 외교관 지중추원사 이예(李藝)다. 「조선왕조실록」의 이종실 관련 기록에 의하면 1459년(세조 5) 8월에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배가 표몰해 순직했다.

 

[울산저널]이기암 기자=1459년(세조 5년) 8월,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순직한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야외)에서 열렸다.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선양회 창립준비위원회(이두철 위원장)가 주최한 제막식은 송철호 시장, 서범수 국회의원, 이동권 북구청장, 이선호 울주군수, 서휘웅·이미영 시의원, 김상용 울주군의원, 최종규 온양읍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안효근 온양읍 이장협의회 회장, 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종실(李宗實, ?~1459)은 조선 전기 울산 출신 무신으로 본관은 학성(鶴城), 아버지는 대일(對日) 외교관 지중추원사 이예(李藝)다. 「조선왕조실록」의 이종실 관련 기록에 의하면 1459년(세조 5) 8월에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배가 표몰해 순직했다.

이에 조선왕실은 7개 도 관찰사에게 명해 표류인 구휼과 시체의 간수를 명했고 일본국왕(쇼군, 당시는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 8대 쇼군>에 해당함)은 일본 천룡사에 수륙대재회를 열어 명복을 빌어줬다고 전해진다. 

 

▲ 1459년(세조 5년) 8월,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순직한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야외)에서 열렸다.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안내비석 설치와 관련 ‘울산의 문화유산’ 알리미 사업의 내용은 관내 비지정문화재 및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일반시민과 단체 등이 안내판·비석을 제작할 시 울산시가 전공자 등 관련 전문가 자문을 거쳐 안내문안 작성을 지원한다. 이에 학성이씨수사공문회는 학성이씨 이종실의 공적비를 문중 자체비용으로 세우고자 하며 공적비에 ‘울산광역시장’ 명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청원했다.

울산시는 관계전문가 자문을 거쳐 비문 문안을 수정(문중 협의)했다. 주요 변경사항은 「조선왕조실록」 속 실제 이종실의 행적을 고려해 ‘활약’이라는 용어를 삭제하는 등 전반적 내용을 수정했고 일반시민 관람을 배려해 어려운 역사용어를 배제했다. 또한 이종실의 실제 벼슬 등 자칫 오개념을 부를 수 있는 내용은 출처를 첨부해 일반인의 이해를 도왔다.

 

▲ 1459년(세조 5년) 8월,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순직한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야외)에서 열렸다.

 

▲ 1459년(세조 5년) 8월,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가 큰 풍락을 만나 순직한 ‘조선시대 통신사 이종실’ 공적비 제막식이 20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8-3(야외)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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