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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전문외교관 - 이예(李藝) |
▣방송 : 2010. 10. 23 (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김진희 아나운서 ▣연출 : 오영식, 박종남 PD ▣글 : 허현정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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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와 일본을 43년 동안 40여회를 오갔던 외교 사절!
실리와 명분으로 조. 일간 평화시대를 이룩한 일본 전문 외교관, 이예(李藝)
일흔 노구에 목숨 건 항해. 그가 펼친 외교의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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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협상가, 조선 최초의 전문외교관 ‘이예’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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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무라’의 「현해탄을 건넌 조선통신사 이예」 |
| 일본 도쿄 시내의 아카시 출판사는 심혈을 기울인 새 책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무로마치 시대 즉 15세기에 일본을 오갔던 조선통신사 이예에 대한 책이다. 그를 발굴한 사람은 일본의 현직기자 시마무라. 그는 에도시대 조선통신사에 대해 많은 책을 썼던 전문가로 「현해탄을 건넌 조선통신사 이예」라는 이번 책을 통해 송희경, 신숙주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던 외교관 이예의 활약상을 밝혔다. 그는 주저 없이 이예를 조일 우호 관계에 큰 빛이 된 외교관으로 평가한다. 조선왕조실록에 70여회 등장하고 일본을 40여회 오갔던 이예.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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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 출신 이예, 좌군 부사직에 오르다! |
-이예, 기구하고도 특별했던 과거 1401년부터 43년간, 통신사로 활약한 이예의 과거는 특별하다. 그는 정통 양반이 아닌 중인계급으로 울산군의 향리 출신이었다. 8살 때 왜구에 의해 어머니가 납치당했고, 1396년 울산군에 침입한 왜구가 군수 이은을 잡아갔을 때 자청해서 왜구를 따라가 극진히 군수를 보필해서 오히려 왜구들을 감복시켰던 인물이다. 그 공으로 이예는 아전에서 벗어나 양반이 됐고 1401년부터 공식적인 외교 사절로 일본 사행을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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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구국에 있던 조선인 포로 쇄환 재연화면 |
-이예, 아픈 개인사를 딛고 승승장구하다! 이예는 25세부터 71세까지 총 40여회의 일본 사행에서 그는 조선인 포로 667명을 구출했고, 당시 아무도 가본 적 없던 머나먼 유구국까지 가서 포로를 쇄환해 오기도 했다. 그 공로로 종5품 좌군 부사직에서 승승장구, 현재의 차관보에 해당하는 종2품 동지중추원사까지 승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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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을 강조한 선각자, 조일 평화시대를 열다 |
| 이예는 세종이 대마도 정벌 이후 교린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에 보냈던 최초의 통신사였다. 그가 교토에서 일본국왕을 만난 것은 총 4번. 이예는 이렇게 국가를 대표해서 일본국왕에게 대장경 등 문물을 전하며 조일 우호관계를 다졌고, 40여회 사행 중 30여회나 대마도를 드나들며 대마도주와 문인제도(일종의 입국허가제)를 체결, 왜인들의 방만한 입, 출입을 통제했다. 조정에서도 그의 전문성을 인정해서 대마도 왜인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이예를 불러 해결할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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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좌지우지한 협상가, 이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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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에 있는 이예의 공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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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아전에서 종2품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또 한 가지 이예의 탁월한 협상 능력이 있었다. 그는 왜구의 근거지였던 대마도를 40여회 사행 중 30여회나 드나들면서 당시 대마도주를 회유해서 그들이 원하는 실리를 챙겨주고 대마도 왜구를 제압하였다. 또한 문인제도(일종의 입국허가제도)를 체결하고 왜인들의 방만한 입, 출입을 통제하는 권한을 대마도주에게 부여해서 힘을 실어주었다. 1443년에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제주도에 침입한 왜구 13명을 종정무로부터 넘겨받아 조선으로 압송해올 수 있었다. 이때 다져진 긴밀한 한일관계는 오랜 평화의 기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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