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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5년1월20일자] ‘충숙공 유허비’가 남긴 것

[나의 생각] ‘충숙공 유허비’가 남긴 것
[경향신문] 2005-01-20 22:45

문화관광부가 2월의 문화인물로 울산 출신 대일 외교관 충숙공 이예선생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마다 그분의 자취를 더듬어 봤다.

우선 그분의 삶이 극적인데 끌렸고 그분이 태어나 자란 곳이 울산이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대표적 유적인 울산 중구 태화동 ‘충숙공 유허비’를 찾았을 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허비가 있는 곳은 충숙공이 태어나 자랐던 곳이다. 8세때 왜구에게 어머니를 빼앗기고 반드시 모셔오겠다는 비원을 품어온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일흔살을 넘어서까지 일본에 40차례 이상 드나들며 비록 자신의 어머니는 찾지 못했지만 왜구에 끌려간 667명의 동포를 되찾아 왔다.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해협을 넘나든 흉중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허비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후세인이 이곳에 들렀을때 그같은 사연을 현장감 있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허비는 두겹의 담벽안에 갇혀있고 쇠문도 잠겨져 있다. 도대체 무엇으로 부터 격리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쇠창틀 사이로 보이는 50평 규모의 내부에는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뒹굴고 있었다. 비문을 판독할 방법이 없고 안내판도 없었다.

유허비 바로 옆에는 시가 관리하는 공원이 있는데 공원명칭은 ‘태화동근린공원’이다.

유허비와 공원을 격리한 수벽(樹壁)을 없애고 공원이름을 ‘충숙공원’이라 붙였더라면 우리는 아담한 사적공원을 거저 얻는 것과 진배없었을 것이다.

이예선생은 평민에서 지금으로 치면 외교부차관인 종2품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왜구에 붙잡혀 가는 울산군수를 뒤따라 대마도까지 가서 결국 무사히 귀국시킨 무용담과 71세때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까지 가서 40여명의 동포를 데려 온 것은 초인적 성실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고구마를 처음 보급한 분도 이예선생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대일 외교관인 충숙공이 왜 이제야 조명을 받게됐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가장 치열한 극일정신의 사표인 충숙공을 일제가 일부터 감췄고, 식민사관에 젖은 학자들이 그를 발굴하는 데 인색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서희의 외교담판’은 이예선생의 횟수에 비하면 오히려 단순한 편이고 ‘온달장군의 신분상승’이 신화적이라면 이예선생의 그것은 훨씬 인간적이다.

그런데 이예선생의 얘기는 오늘날 울산광역교육청이 제작한 3~4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도 소개되지 않았고 강북·강남 두 교육청이 제작한 ‘울산의 생활’이란 교재에도 없다.

역사학자는 물론 울산사람도 그를 기리는데 소홀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울산 학성 이씨 시조이기도 한 이예선생은 한 가문을 넘어 역사상 매우 독특한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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