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도 이제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해마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전후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유태인의 격언이다. 어머니는 신을 대신하는 존재란 뜻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어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방황과 좌절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그 정한(情恨)을 승화시켜 오히려 더 큰 성장의 에너지로 삼기도 했다. 9세에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링컨은 그 한을 독서로 승화시켜 미국 대통령이 된 뒤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종식시켰다. 9세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 사모(思母)의 정을 시를 공부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것으로 풀었다 한다. 8세에 어머니를 왜구에 납치당한 충숙공 이예(李藝) 선생도 마찬가지다. 그 그리움과 분노를 왜구에 대한 정보수집과 일본 연구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공은 그 후 조선의 유일한 전문외교관으로 성장해 일본에 납치돼간 조선인 가운데 667명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등 큰 외교업적을 남겼다.  

링컨이나 다산의 경우와는 달리, 공은 왜구라는 이민족 도적의 납치에 의해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선생의 어머니가 왜구에 납치될 당시 인구 4천명의 울산에 3천명의 왜구가 쳐들어왔다. 몸부림치며 일본으로 납치돼 가는 어머니의 발목을 잡고 매달리던 8세 소년의 트라우마(trauma)가 어떠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충숙공이 ‘아직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 일본 어느 하늘 아래, 어떤 모습으로든, 언젠가 다시 뵐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슬픔과 좌절에 빠질 시간을 아껴 일본어를 배우고 왜구의 사정을 연구했을 것이란 점이다.  

공은 울산 출신으로 태종·세종대에 대일통신사로 활약했다. 24세 되던 해 기관(記官·공무원)이란 직위에 있을 때 왜구가 쳐들어와 군수 이은을 납치해 대마도로 향했다. 이 때 공은 군수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왜구의 배에 숨어든 뒤 자신도 잡아가 달라고 왜구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함께 대마도로 잡혀간 공은 마침내 군수를 구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공은 29세에 일본에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40여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다. 그 중 4회는 일본 국왕에게 파견됐다. 그 4회 중 하나가 1428년 사행이었는데 이때 공은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역사에 남게 된다. 공은 71세의 노령에 마지막으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이때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체결하고 종2품 동지중추원사의 벼슬에 올랐다. 공식 외교관의 첫걸음을 떼기 1년 전, 공이 28세 되던 해, 조정에서는 회례사 윤명(尹銘)을 대마도에 파견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은 어머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조정에 간청하였고, 마침내 수행원의 자격으로 대마도로 건너갔다. 수행원 업무의 남는 시간을 쪼개, 공은 대마도·일기도·송포(松浦)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어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왕조실록에 상세히 실려 있다.  

공의 사모곡(思母曲)은 다른 조선 사람들의 어머니들을 고향의 가족에게 돌려주려는 노력으로 승화됐다. 공은 40여회에 걸친 일본 사행 중, 왜구에 잡혀갔던 667명의 조선 사람들을 고향으로 데려왔다. 그 667명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공이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에서 데리고 온 전언충(全彦忠)이다. 14세에 유구국에 팔려갔다가 35세에 공을 따라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늦었지만 그 부모의 초상을 치르려 하자 태종임금이 이를 불쌍히 여겨 겹옷 및 홑옷, 포목, 쌀과 콩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왕조실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끝내 어머니와 재회하지 못한 공에게는 전언충의 어머니가 바로 당신의 어머니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일엽편주와 같은 작은 배를 타고 험한 풍랑을 헤치며 40여회나 일본을 오가게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잃은 공의 설움과 그리움이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됐다. 그렇듯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성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그 뿌리가 닿아있다.   

효성은 근본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온다. 따라서 1차적으로 조상에 대한 사랑과 연결된다. 울산사람 이예가 생명을 걸고 유구국으로 가 함창사람 전언충을 데리고 왔다면 울산사람의 후예들도 함창사람의 후예들을 귀히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효성은 2차적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다고 봐야 한다. 신이 어머니를 만든 것은, 어쩌면 ‘어머니’라는 인류의 공통분모를 매개로 이웃사랑과 홍익인간의 정신을 펼치려 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명훈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