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소설 '최초의 조선통신사 이예' 석계서원에 봉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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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2.01.15. 오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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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일본에서 변호사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가나주미 노리유키씨가 쓴 소설 '최초의 조선통신사 이예'가 15일 충숙공 이예 선생의 신주를 모신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석계서원에 봉납됐다.

울산mbc에 따르면 노리유키씨는 헤이세이 프로젝트라는 프로덕션의 고문변호사가 일하다 우연히 이예 선생의 생애를 알게 됐다.

그는 15세기에 목숨을 걸고 40여 차례나 현해탄을 건너 한국인 포로를 구출하고 일본에 대장경 등 문물을 전파한 이예 선생의 생애에 깊은 감명을 받아 소설을 쓰게 됐으며, 석계서원에 책을 봉납하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소설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언급된 이예 선생의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667명의 조선 포로를 찾아오는 과정과 쓰시마 도주와 맺은 무역조약인 계해조약 체결 등 외교관 이예 선생의 활약상을 사실감 있게 전하고 있다.

이예 선생은 1372년 울산 출생으로 향년 73살에 별세하기까지 40여 차례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됐고 일본국왕을 가장 많이 만난 조선시대 대표적인 외교관이다.

이예 선생의 앞에는 최초의 조선 통신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이는 통신사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세종 10년 1428년에 일본에 파견됐기 때문이다.

통상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 통신사를 파견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에 앞서 이예 선생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특히 이예 선생은 중인 계급인 아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해 종2품 동지중추원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예 선생은 1396년 12월, 일본 해적에게 붙잡혀간 군수를 구하기 위해 포로를 자청해 대마도까지 따라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양반이 됐다.

노리유키씨가 고문변호사로 있는 헤이세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울산MBC와 공동으로 비단벌레를 이용해 미술품을 복원하는 한일 장인들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 '천년을 잇는 해협의 빛'을 제작한 업체로 한일 과거사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두고 있다.

헤이세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이예 선생의 생애를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일본에서 한국인의 생애를 영화한 사례는 매우 드물어 울산 학성 이씨의 시조인 이예 선생의 업적이 일본에서도 그 빛을 발하게 될 전망이다.

gog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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