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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다시 천고(天鼓)를 생각하며 - 정호
경상시론/다시 천고(天鼓)를 생각하며
새 각오로 하늘의 북소리 울려야
해마다 2월에 느끼는 계절 감각은 봄이 어디선가 시작되고 있음에도 늦추위에 떨기가 일쑤이고 활동력을 위축시키기도 하는 그런 때이다. 그런데 올해의 2월은 우리들에게 더더욱 냉기가 감돌아 왠지 봄이 더디 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610년의 역사를 간직한 숭례문이 불탔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판은 살려냈다니 다행이다. 숭례문 현판은 당대 명필로 꼽혔던 양녕대군이 썼다는 글씨로 다른 현판과는 달리 세로로 달려있는 것이 특징인데 관악산 화기(火氣)가 경복궁에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세로로 세웠다고 한다. 훗날 천하명필 추사 선생도 숭례문 현판을 바라보며 날 저무는 줄 모르고 감탄했다고 한다.

어쨌든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도 비켜간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불탔으니 온 국민들이 어찌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이 나라의 백성인 자가 개인의 불만을 이유로 방화하다니 그 분노는 또 어떻게 삭일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온다고 노래한 민족시인의 말처럼 따뜻한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더욱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민성공시대를 이끌기 위해 더욱 치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후손들에게는 역사이며 그 역사를 통하여 후손들은 나아갈 바를 찾게 된다. 그러면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의 2월은 어떠했는가?

나라를 잃고 앞길이 보이지 않던 그 시절의 걸사와 의인들은 풍찬노숙하며 광야를 헤매면서도 구국일념으로 온몸을 던졌다. 아니 자신의 모든 걸 버렸다. 그런 2월에 만주에서 39인의 의인들이 최초의 대한독립 선언을 했으며, 도쿄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했고, 이어서 국내에서는 기미만세운동을 준비한 것도 2월이다. 필자는 이런 활동의 중심에 서서 역사와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진력하시다가 일생을 마친 단재 신채호 선생을 떠올리고 싶다.

'한번 치면 우렛소리 나고, 두 번 두드리면 기세가 산과 같으며, 세 번 네 번 치면 의사(義士)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다섯 번 여섯 번 두드릴 때마다 적의 모가지가 낙엽처럼 흩날린다. 하늘이 조선을 만드시고 하늘이 조선을 보호하시니 조선을 침략한자 누구인가? 하늘의 적이 멸망하지 않으면 하늘이 번창하지 못하리라.'

이 글은 단재 선생이 심산 김창숙 선생과 더불어 1921년에 창간한 독립운동 잡지인 '천고(天鼓)'의 창간사 일부이다. 이 강건하고 의기찬 문장은 암흑 속에 웅크린 우리 역사와 민중을 일으켜 나라를 잃고도 자중지란에 빠진 임시정부 인사들의 역사의식을 바로 세우고 의열단과 다물단을 독려하여 일제와 그 주구들을 처단하는데 큰 힘이 되고자 하늘의 북소리를 울렸던 것이다.

한말 독립운동가로, 역사학자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단재 같은 이런 선열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게 되었고 새 대통령 출범 첫 해를 보내게 된다. 다들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도 크고 희망에 들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지난 10년간의 학습효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시행착오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어느 정권이든 그런 다짐 없이 출발해서 국민에게 실망을 주었는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한 개인의 삶도 아주 미세한 그림 퍼즐처럼 짜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국가라는 거대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야 두 말해서 무엇 하리.

해서 지금의 언론들이 그 옛날에 울렸던 '천고'의 기개처럼 창간 이념을 재확인하면서 정부정책과 사회 흐름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여론 형성을 제대로 좀 잘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당장은 경부운하와 영어교육이다. 신문사마다 정론직필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꺾이기보다 휘는데 익숙하기도 했다. 밤의 대통령 운운하며 권부를 자처하기도 했고 어느 대통령 선거 때는 우리 선거는 어느 신문이 다해준다고도 했고, 그런 언론과 색깔이 다른 대통령의 폄훼가 극에 달했던 모습들은 참람 그 자체였다. 이제 일주일 후면 단재 선생이 뤼순감옥에서 서거하신 지 72주기를 맞는다. 언론이든, 권력자이든, 소위 식자를 자처하는 아류이든 귀기울여 하늘의 북소리를 들으라.

이정호 길천초등학교장
[2008.02.1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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