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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an old house
사적지순례   석천리고가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09-09-27 (일) 19:59
https://goo.gl/Uu3Xxm
ㆍ추천: 0  ㆍ조회: 4710    
IP: 121.xxx.24
팔작지붕 받친 둥근기둥 옛 영화 말하는듯
     
 
영조대 학성이씨 11대손 이의창이 건립
1934년 이재락 실용성 갖춘 가옥 새단장
안채 툇마루 앉아 안방마님 호령 떠올려


성탄절 아침, 울산에 몇 안 되는 옛집 가운데 하나인 학성 이씨 고택을 찾아 나섰다. 옛집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 마음의 고향을 찾는 느낌이다.

우리가 '내림터사랑'이란 모임을 꾸려 이렇게 문화유산을 찾아 답사를 다닌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사진과 글로만 보던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느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때론 조상들의 지혜나 흔적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무심한 손길에 훼손된 문화유산을 대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산업도시 울산에선 옛 문화의 자취를 찾기 힘들 것이라던 막연한 생각이 변화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행을 되풀이하면서, 급속한 개발 바람 속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잃지 않은 '그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그들'을 찾아 나선 걸음이다.




학성 이씨 고택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울산예술고등학교를 지나 만나는 첫 번 째 신호등이 있는 곳이 '원당골 사거리'다.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다시 왼편으로 난 다리를 건너 회야강을 따라 차로 2분 가량 달리다 보면 여러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석계서원을 만나고, 왼쪽으로 꺾어 들면 주변에서 가장 큰 기와집을 만나는데 그 집이 학성 이씨 고택이다.

10여년 전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무너졌던 담장과 흘러내릴 듯했던 기와지붕은 새롭게 단장되었다. 고택으로 들어서려는데, 대문이 우릴 가로 막고 섰다. '매주 화·목요일은 정기휴일'.

'이런, 오늘이 화요일 아닌가! 오늘 기행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죄송하지만 관리담당자에게 연락이라도 해볼까?'

개인적인 욕심이 앞서 전화를 했다. 고맙게도 1시간 안에 오신단다. 1시간을 10분처럼 기뻐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따스한 차를 나누어 마시며 약속시간에 맞춰 고택의 대문을 지키고 섰다. 어린 아들과 외출에 나섰던 담당관리인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무사히 학성이씨 고택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엔 언제나 그러하듯,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을 앞에 둔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넓은 마당과 오른쪽으로는 광이, 대문 옆으로 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툇마루가 있는 3칸짜리 집이다. 둥근기둥이 팔작지붕을 받치고 있다. 과거 민간에서는 둥근기둥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옛 주인의 재력과 위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 오른편으로 난 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자 형태의 살림채가 우릴 맞이한다. 살림채는 정면 6칸짜리 건물로 학성이씨 고택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기와지붕은 사랑채 건물과 같은 팔작지붕을 얹었고,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 모양 역시 둥글다.

흔히 안채라고 불리는 살림채는 왼쪽에 부엌을 끼고 있다. 아궁이에 가마솥이 걸려있는 옛 부엌에 들어섰다. 부엌과 안방으로 통하는 자그마한 문이 귀엽다. 안방에는 붙박이장이 있고, 방문은 이중문으로 겨울을 대비한 듯 보인다. 안방 옆으로 마루방을 두었다. 마루방은 문을 달아놓아 무심코 보면 그저 온돌방이려니 하고 넘어가기 쉽다. 마루방과 연달아 건너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안방 앞 툇마루에 앉는다. 마치 그 옛날 안방마님이나 된 양. 한 눈에 들어오는 광과 곳간을 지그시 바라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열쇠꾸러미를 만지작거려 본다.

살림채를 돌아가면 너른 뒷마당이 있다. 뒷마당 오른쪽 끝자락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보통의 사당이라면 제를 올리는 시간 이외엔 항상 문이 닫혀 있으련만, 이곳 사당의 문은 위로 활짝 열려있다. 기분이 묘하다. 현재 이 고택은 울주군 소유로 울주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고택의 공식 명칭은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이다. 학성 이씨의 시조인 이예의 11대손 이의창이 조선 영조41년(1765년)에 처음 건립하였고, 고종 때 이의창의 증손 이장찬이 중수하였다.

이곳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것은 1934년 이재락에 의해 중수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살림채와 사랑채를 중수하면서 일제강점 시기에 도입된 기계톱을 사용하여, 실용성을 두루 갖춘 부농형 가옥으로 단장하였다고 한다.

1919년 고종황제의 인산(국장)에 참석하러 서울에 갔다가 독립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와 문중 사람들에게 만세소식을 전해 남창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재락 선생이 이 집에 사셨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이렇듯 옛 집은 치열하게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어우러진 채 우리 곁에 있어 더욱 소중하다.

글·사진=내림터사랑 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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