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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an old house
사적지순례   석천리고가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4-03-31 (수)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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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리 학성이씨 근제공 종택

 

 

 

  울산광역시 제3호 석천리 학성이씨 근제공 종택

 

  이 곳 석천리 이씨고가는 학성이씨의 파종가 집으로써, 조선 중기인 영종조에 학성이씨의 시조인 이예의 11대손 이의창에 의해 건립된 것이라 전해진다. 이후 고종때에 이르러 이의창의 증손인 이장찬에 의해 중수가 이루어지고, 1934년에 살림채와 사랑채 등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대문채와 사랑채와 살림채의 영역분리가 명료하고, 독립된 사당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조 상류층 종가의 주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는 퇴가 있는 3칸 홑집의 평면이며, 오량가구위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살림채 는 정면 6칸의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며, 특히 대청 앞의 세 살문은 정피살로서 뛰어난 의장성을 갖추고 있다.
이 집은 1765년(영조 41년) 이의창이 세운 학성이씨 지파 종가 집이다. 고종때 한 차례 고치고, 1934년에 대대적으로 중수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의 3.1운동을 주도한 이재락도 이 집에서 살았다. 가옥의 배치에서 행랑채, 사랑채, 안채의 구분이 뚜렷하고, 따로 사당을 갖추고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 종가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채의 정침에서 대문쪽으로 조산인 벼락띠산이 보이도록 가옥을 두어 풍수설을 따랐다.
건축 양식을 보면 사랑채는 툇마루가 있는 3칸 홑집의 평면 가옥이다. 안채는 보를 다섯줄로 얹어 넓이가 두 칸 통되게 한 위에 팔작지붕을얹은 정면 6칸의 비교적 큰 건물로, 기둥도 개인 집에서는 쓰지 않던 둥근 모양이고, 다른 사대부집 안채와 달리 넓은 뒷마당이 있다.  



[내고장 자랑] 늪·별장·샘을 품은 회야강

울산 울주군 웅촌면 초천리와 통천리에 걸쳐있는 회야강 중류는 강물이 뱀처럼 꼬며 흐르다가 쇠뿔 모양의 호수를 이룬 곳이다. 이곳은 사행천(蛇行川)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우각호(牛角湖)란 특이한 지형이 또렷하게 드러나 자연학습을 겸한 답사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탄산수가 솟는 우물도 있다. 회야강 사행천 물길이 바뀌어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은 곳 가운데 남북 250m, 동서 90m, 깊이 1.3m 호수형 늪지가 생겨났는데 지역주민은 장자못이라 부르고 지도에는 못산늪으로 표기돼 있다. 이 늪은 멀리서 보면 쇠뿔처럼 보여 우각호란 이름이 붙였다. 이 못산늪은 지난해 울산생명의 숲이 멸종위기 및 보호대상 식물 23호인 순채가 발견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이 늪에는 마름, 통발, 수련, 창포, 부들 등 30여종의 수생식물이 자라 식물관찰에 흥미를 지닌 사람의 발길이 잦다. 또 물길이 구부러지는 입구에 형성된 마을이름이 ‘돌래’인데 그 이름은 ‘냇물이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조선 영조때 세운 학성 이씨 종가집인 ‘이씨 고가’(지방문화재자료 제3호)가 있고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나 1970년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씨의 퇴락한 별장도 있다. 물길이 크게 휘어진 초천마을 앞 강바닥에는 거품이 나는 물이 솟구치는 샘이 있다. 초천(椒泉)의 ‘초(椒)’는 산초나무를 뜻하는데 샘물 맛이 산초처럼 떨드름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틈새에서 나오는 이 물은 1960년대에는 설탕을 섞어 ‘사이다’처럼 판매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약수터로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있어 부산에서도 물을 길으러 온다. 경관이 다양한 이 하천 하류에는 회야댐이 있고 길도 잘 정돈돼 울산 마라톤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경향신문 김한태기자 kht@kyunghyang.com
입력: 2004년 09월 03일 23:52:29 / 최종 편집: 2004년 09월 03일 23:52:29

[집성촌을 찾아서]66칸의 고택 온전히 지킨 울산의 세도가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석천마을(학성 이씨)

울산에서 부산방면으로 난 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울산예술고등학교를 지나면 울주군 웅촌면 오복리 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 따라 1.4㎞정도를 더 따라가면 울산시 문화재자료 3호인 "석천리 이씨고가"가 있는 웅촌면 석천리 석천(일명 돌내)마을이 나온다.
 석천리 이씨고가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 사당 등 모두 13동에 66칸의 고가는 누가 보더라도 세도가의 집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집이다.
 약 240여년 전에 지어진 이씨고가는 학성이씨 서면파로 임란공신 겸익(謙益)의 고손인 의창(宜昌, 1725~1781)이 웅촌 대대리에 살다가 석천으로 옮겨오면서 새로 지은 집이다.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의 3.1운동을 주도한 재락(在洛)도 이 집에서 살았다.
 대대에 살던 이씨가 석천으로 오게 된 이야기는 "국풍(國風)"에 얽힌 전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유명 풍수가 국풍을 도와줬더니 현 이씨고가 터가 명당임을 알려줘 그가 알려주는 대로 집을 지은 것이 바로 이 집이다.
 이 마을 출신 이동호씨는 "마을이 마치 둥근 소쿠리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을 동산 동뫼는 소쿠리 안에 든 붕어모양으로 회야강 쪽으로 헤쳐나갈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씨고가는 붕어 꼬리 위치에 있지요. 힘이 모여있는 꼬리에 이씨가 터를 잡고, 붕어 머리부분 앞에는 연못을 파서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하는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의창의 둘째아들인 죽오공 근오(竹塢公 覲五)와 5세손 석진(錫縉)은 대과에 급제했고, 증손자 장찬(璋燦)과 4세손 규노(奎魯)와 규용(奎龍)이 진사를 지냈다.
 또 "근오 할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을 지냈으나 낙향해 1792년 재천정(在川亭)을 건립해 후진을 양성했고, 장찬 할아버지는 시조인 예(藝)의 일대기와 문장을 모아 임신년에 개간한 책 "학파실기"의 목판 43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목판 43판은 현재 이휴정에 보관중이다.
 동호씨는 이처럼 유명 풍수가의 조언대로 붕어의 힘찬 꼬리질과 함께 집안에 벼슬을 지내는 인물이 배출되는 등 좋은 일이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묘사 이외에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오전에는 시조인 예를 모시고 있는 석계서원에 모여 봉향하고, 음력 9월9일 시조 향사를 지낸다.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마을전체 80집 가운데 60집이 이씨문패를 달 정도로 집성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12집에 불과하다.
 전체 200여호까지 번창한 의창의 후손들은 울산,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각 계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석천마을 출신 가운데 정계에는 후락(81) 전 대통령 비서실장, 동석(56) 전 울산시의원, 복(64) 현 열린우리당 울주군 국회의원 경선후보와 고 윤락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있다.
 관계에는 거락(80) 전 경찰종합학교장, 설(74) 국가안보회의이사관, 정희(47) 울산시 사회복지과 노인복지담당 사무관과 고 동립 충남도 문교사회국장, 고 동윤 울산경찰서장, 고 탁 농수산부 부이사관, 고 동만 울산시 부시장이 있다.
 학계에는 동순(59·신라대학교 미술과 교수), 동덕(46·공학박사), 병호(57·경상대 건축공학과 교수), 수원(54·농학박사), 용환(46·서울대 전자공학과 교수), 강환(45·인제대 의대 교수), 관수(64·동의대 경제학과 교수), 동하(57·동의공업대학 사무국장)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산업계에서 활동중인 식환(69·강남고속관광(주) 회장), 동호(62·태정개발 대표이사), 중걸(51·(주)우주전기 대표이사 )씨가 의창의 후손이다.
 금융계에는 일환(59·외환은행지점장), 동훈(57·제일화재보험(주) 회장)씨가 이 마을 출신이고 동권(63)씨가 전 부산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의료계에는 동구(69·산부인과 의사), 태걸(48·외과의원장)이 있다. 경상일보 문화교육부장으로 있는 상환씨도 같은 갈래다.
 한편 석천마을 맞은편 도로변에는 석계서원(石溪書院) 복원이 한창 진행중이다. 1737년에 지어진 석계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됐다가 지난 2000년부터 복원을 시작, 오는 3월21일 복원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석계서원 앞에는 반계 이양오(李養五·1737~1811년)의 문학비를 만날 수 있다. 반계 이양오는 석계서원에서 근오를 비롯해 후학지도에 힘써 문하에 많은 학자를 배출한 조선 영조 때 학자했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2004.02.0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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