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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grandfather
태암정할아버지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5-08-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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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巖亭記

□ 泰巖亭記

 나의 벗 鶴城人 李中洛君이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나의 6세조이신 故 知中樞 泰巖公께서 만년에 은퇴하신 곳〔(林下〕에서 덕을 세워 후손에게 넉넉함을 드리우다(垂裕)가 돌아가신(沒世) 지가 또한 일백 오십 년이 되었는데, 우리들이 묘지로 가는 길(墓道)의 아래에 터를 잡아 정자를 짓고 선조를 추념하고〔羹牆(갱장)〕사모하게 되었으니, 오늘날의 治 曲江(흥해읍의 舊名)의 장생리(덕성리의 舊名)가 그곳입니다.
 그곳에 中堂을 짓고 좌우에 室을 두었으니 좌를, ‘止宿’이라 하고, 우를, ‘養蒙’이라 했으며, 堂을, ‘依仁’이라 하고, 합하여 이름을 지어 ‘泰巖亭’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산수의 특별한 경치〔泉石〕는 없으나, 고개 넘어 그 북쪽에는 별들이 벌려있고, 그 동쪽에는 曲江이 지나가고 있으며, 학은 날아 남몰래 송축하는 듯 서쪽에서 拱揖(공읍)하고 있고, 남쪽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가리고 있으며, 藥沼가 맑고 깊은 것도 또한 정자에 어울리는 운치입니다. 감히 그대에게 記文을 부탁합니다‘ 고 하였다.
 相翊이, ‘병으로 委巷에 누어있으므로, 가서 보지를 못하니, 정자의 記文을 쓰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니, 그렇다면 마음에 느낀 바를 대략 이야기하겠으니, 대신 잘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들으니, 옛날의 군자는 齒와 德과 爵을 三達尊이라고 하였는데, 齒와 德은 모두 天命에 있는 것이나, 다만 덕만큼은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덕을 실제로 얻는 것은 도리어 齒와 爵보다 어려운 것이니, 이 三者의 어려움이 이와 같은 것인데, 대체로 泰巖公은 鶴坡(학성이씨문중 시조)와 愛日(애일당소문중 중시조)의 아름다운 端緖를 잇고, 그리고 葉西와 農叟 등 많은 선배로 더불어 서로 切磋琢磨하였으며, 어버이를 섬기고 居喪을 하며 집을 다스리고 후손을 넉넉하게 함에는 한결같이 孝悌로서 하고 忠謹으로 근본을 삼았다.
 덕을 몸에 간직하고 있는 자는 天和를 기르고 길한 경사를 부르는 것이니, 이러므로 능히 한가히 노닐면서 大年에 올라서 樞府의 높은 지위에 올랐는데, 이는 또한 구하지 않았는데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공 같은 이를 일러 겸하여 三尊者라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대체로 후손이 된 자는 오히려 마땅히 송축하고 앙모함을 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하물며 자손이 된 자는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이제 李氏들이 이곳에 정자를 세운 것은 공께서 생활하시던 곳〔杖屨〕의 자취를 쫓고  계시는 곳을 바라보며 그의 風猷와 音旨를 사모하게 되고, 또한 그 가운데에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 하게 되었으므로, 그가 말한 德이라는 것을 더욱 힘써서 얻게 되었으니, 이는 바로 즐겁게 건축한 큰 뜻이 된다. 덕을 가진 이들이 긴 세월을 내다보고 살아온 이곳에서 시를 쓰고 술을 마시며 物役을 크게 여기는 자도 또한 어질다 하지 않겠는가!
 《詩經》에서 말하기를, “너희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덕을 닦을 지어다”라고 했으니, 감히 李氏 여러분들이 바라고 또한 다시 中洛군의 부탁도 있었기 에 記文을 쓰다.
 을축년 중추절 안동후인 權相翊이 삼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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