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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러리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17-09-24 (일)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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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axfNpU
ㆍ조회: 1979    
IP: 175.xxx.18
사진으로 보는 포항의 변천사

  
사진으로 보는 포항의 변천사" 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등 격동기와 60, 70, 80년대를 거치며 발전한 포항의 모습이다. 240여개의 이미지를 편집하며 주제별로 작성하기 보다 년도순으로 올리기로 한점을 이해 바라며, 사진 내용은 일강점기, 6.25 전쟁, 동빈내항과 해안풍경, 농어촌지역, 시가지와 도심뒷골목, 새마을운동, 포스코탄생 등 포항인들의 삶이 그대로 기록된 사진들이다. 대부분의 사진은 포항시 홈피에서 가져온 것들이라 시의 입장에서 보는 기록물로 보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 북구, 남구의 구명은 현재를 표시한것.  (전체 243개 이미지)

 
  여천시장(중앙동에 위치) - 구한말
 
  일본인 설립 심상소학교 - 1909년

 
  내항에 정박중인 황포돛배 - 1920년
 
  현 동빈사거리부근의 칠성천하구(형산강 지류)의 섭다리 - 1920년
 
  청하면 청계리 모습 - 1920년대
 
  일강점기의 포항
 
  구룡포항 모습 - 1930년
 
  포항 송도해수욕장 (엽서의 희미한 한자는 상도로 표기...) 일강점기의 엽서라 기모노 입은 여인 모습이...
 
  경북 8경 중 포항. 일강점기동빈내항과 송도해수욕장
 
  조선 경북 포항 전경 이라고 쓰인 일,강점기 엽서
 
  일,강점기의 엽서, 포항 본정통. 현 북구 상원동
 
  포항 번화가, 본정통. 다른시기에 바로위의 장소보다 조금 뒤쪽에서 촬영된듯 하다.
 
  아래  포항읍사무소 / 위 포항경찰서
 
  강점기 때의 동빈내항
  포항은 과거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동해에서 수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구룡포항 방파제
 
  칠성천 승개교(남빈사거리)1940년
 

  
  경북 8경 포항해수욕장
 
  포항 동빈내항
  ▽ 90년 전 포항의 옛모습 담긴 사료 발견 - 포항뉴스 2009. 2. 2

     
 90년 전인 1920년대 옛 포항면과 구룡포(창주면) 시가지의 모습, 주요건물, 사회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가 발견됐다.

 이 사료는 1929년도(소화4년)에 당시 구룡포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河合淸治)이 조선정보협회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한  2절지 규격의 2도 컬러인쇄물로서 도시단위별 상황을 소상히 알리는 시가지종합안내서다.

 사료의 전면에는 주요 간선도로와 지어진 건물명칭, 상호, 소유주, 전화번호까지 소상히 기록돼 있으며, 주요건물과 시설 장면을 사진으로 배치돼 있다.
 이면에는 당시 시가지(도시) 개황을 비롯해 연도별 인구동태, 가구 수, 교육기관 및 재정상황, 산업별 구조와 생산량, 기관 단체명과 현황, 음식점, 운송수단, 직업별 현황 등 당시 사회 세세한 분야까지 소상히 담아져 있으며, 각 시설과 건물은 시가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위치색인까지 나타내고 있다.

 포항시는 이 사료를 자세히 분석하여 당시 포항사회를 연구하는 사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강점기 당시의 포항면 현황
     
  ○ 학교 1928년도


 
     - 공립 포항심상고등소학교(1909년 설립) 학생수 895명

 
     - 공립 포항보통학교(1916년 설립) 학생수 1,717명
     - 사립 영흥학교(1912년 설립) 학생수 822명
     - 사립 보명학교(1922년 설립) 학생수 582명
     - 사립 노동야학교(1924년 설립) 학생수 246명
     - 사립 포항유치원(1922년 설립) 학생수 200명

  ○  인구 (1919년~1927년도)
   

  
   ○ 어업인 : 1,446명 (조선인 516, 일본인 903명)
   ○  선박: 275척 (어업용 203, 발동기선 6, 어획물운반선 66)

   ○  기타 산업체
         사진업, 무역상, 미곡정비업, 의료기관, 양조업, 여 관, 음식점, 고물상, 금은방,
         정육점, 목재상, 어업중개인, 위탁업, 제과점, 자전차점, 신문지 국, 대서업소 등
  
   ○ 창주면(구룡포지역) 인구현황 - 1929년도 기준
      - 구룡포지역 9,058명 (조선인 8,166, 일본인 692명)

      - 창주면 농업인 6,831명

   이 뉴스클리핑은 http://pohangnews.co.kr
 
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이상 일제강점기때의 포항 이며, 해방과 한국전 발발 이전의 포항에 관한 자료는 아직 수집된게 없어 아래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의 포항부터의 사진을 수집해 년도순으로 정리 해 봅니다.   출처 : 포항시
 
 
 
영일만에 정박중인 미해군 함정 - 1950년
 

 
  송도해변에 상륙한 상륙정 - 1950년
  
  동빈동, 대신동 일대 - 1950년
 
  월포만에 정박한 미군함 - 1950년
 
  포항에서 하역 작업중인 LST 모습 - 1950.7.22
 
  항만청 앞 방파제를 통해 들어오는 국군장병
 
  북부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외국지원병 - 1950년
 
  동빈부두 상륙정 - 1950년
 
  동빈내항을 경계중인 장병 - 1950년
 
  항구동의 해군포항경비부 - 1950년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있다 - 1950년 8월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길을 안내하는 부녀자와 학도의용군 - 1950년
 
  6.25-포항지역 학도의용군

한국전쟁 당시 안동지역으로 침공한 북한군 제12사단이 동남진하여 1950년 8월 10일 포항 북쪽의 흥해를 점령함으로써, 국군 제3사단의 퇴로는 차단되고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은 계속되어 포항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포항에는 제3사단 후방사령부가 포항여자중학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학도병 71명이 제3사단에 입대하기 위하여 사령부로 찾아왔으나 자체방위능력은 없던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강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이 1950년 8월 11일 소티재를 넘어 포항시내로 진격하였다.

점령을 당한 포항은 포항지구전투라 불리는 학도병들과 국군 제3사단의 후방사령부 행정요원들이 참여한 전투결과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번 민부대(민기식 대령 지휘하에 제7사단 창설을 위한 기간요원)에 의해 포항을 탈환했다.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학도병과 국군을 상상으로 그린 모습
  뒤의 배경이 포항여자중학교 건물이다. 아래에 40년 전인 <포항여중 1972년 >사진에 그 모습이 보인다.

  
   1950년 8월에 촬영한 학도병들의 모습 (다른 지역의 학도병)

  
   용산 전쟁기념관의 포항여자중학교에서 학도병 전투 장면


 낙동강 방어전투 당시 학도병들의포항여중 전투 상황을 재현한 것으로 한국군 제3보병사단 후방사령부를  차린 포항여중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학도병들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백병전(白兵戰)'을치루는  모습을 모형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

 포항관련 사진을 수집하다보니 실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개런트 M1소총과 실탄 250발, 수류탄을 지급받은 71명의 학도병 이야긴데, 포항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사단 사령부 행정병과 진을 치고 있다가 이들의 11시간에 걸친 첫번째 전투는 새벽녘에 정찰대로 온 소수의 인민군을  섬멸했고, 두번째도 선제공격을 해서 물리쳤고, 세번째는 국군정규부대의 잔존 병력들이 있어기에 버텄고,


 마지막 네번째는 날이 밝아오자 다시 밀려오는 인민군에게는 학도병만 남은 상태에서 인민군에 포위되어 이미  총알도 떨어져 수류탄과 빈총으로 치열한 육박전을 치루다 일부는포로로 잡히고 대부분 전사했으며 장시간 버터준 학도병들에 의해 전열을 가다듬은 국군은 인민군에 점령 당했던 곳을 재탈환 했다는 실화와 이중 인터넷 상에 많이 알려진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일기) 입니다.

 다음의 일기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에서 숨진 소년병(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의 일기 입니다.  

 이우근은 국군 제3사단 (소속?) 소년병으로 북한 정예군을 맞아 싸우다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 일기는 그의 죽엄을 수습하던 중 주머니 속에서 피와 범벅이 된채로 발견된 수첩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50 년 8월 10일 목요일 날씨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읍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읍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마음이 가라 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71명 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청결한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사람에게 갈아 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 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그러나 71명의 학도병은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학도병은 시신훼손이 심했고, 수첩 역시 피에 잔뜩 젖어 알아 볼수가 없었다...

이 글을 옮겨 적으며 눈물이 나네요 (__) ...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로 영화 관람객을 울리기도...)

 
  치열한 공방전 후의 초토화된 포항 시가지모습 - 1950년
6.25전쟁 당시 포항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고 말았다. 원형으로 파인 자리는  탄흔자리로 보인다.

 
  폐허가 된 포항시가지 - 1950년
낙동강 방어선은 북의 남침으로 전개된 한국전쟁의 승패가 달린 최후의 저지선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없는 상황이라 낙동강 일대에 전개된 치열한 전투들을 꼽을때 '외관전투' 외에 포항 '형산강(兄山江) 도하작전'이 포함된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중순, 형산강 북쪽 포항을 점령한 인민군 제2군단 제12사단이 남쪽 F-51 전폭기 출격기지인 영일비행장과 경주시 점령을 시도하자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 이를 저지하고 포항을 탈환하려는 국군 제3사단 제22연대 사이에 전개된 공방전이다. 
 
 
이렇게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한달 반 동안 펼친 공방전은 결국 인민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으며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개시와 더불어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을 개시함으로써 전쟁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 때 포항을 단기간에 탈환하지 못했더라면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되어 피난정부가 있던 부산도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낙동 방어선 상황도   /  초토화 되었어도 온전한 그대로 남은 건물이라는 노컷뉴스... ▲

낙동강 방어선 상황도. (1950. 9. 1 ~ 9. 15. ①국군 제3사단, ②국군 수도사단, ③국군 제8사단, ④국군 제6사단, ⑤국군 제1사단, ⑥미 제1기병사단, ⑦미 제2사단, ⑧미 제25사단, ⑨미 제 24사단.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중앙동 제일교회 부근)
 
  치열한 공방전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중앙동) - 1950년 9월
 
  6.25-유강 외팔교 부근 격전지
 
  6.25-포항여고 교정에서의 전몰학도병 유골봉안식
 
  6.25 직후의 구룡포항 1951년
 
  여남동 미역채취 - 1956년
 
  시의회 의사당 낙성식 -1958년 9년 18일
 
  남빈동 사거리-부두방향 도로 1959년
 

  
  호미곶 등대 모습- 1959년
 
 
  호미곶 등대 - 1960년
 
 
  포항경찰서(현북부경찰서) - 1960년
 
  송도해수욕장과 동빈내항 - 1961년
 
  동빈내항 - 1961년
 
  용흥동 ↔ 양학동간 도로 - 1963년
  
  구문화원-나루끝 - 1966년
 
  우체국-육거리간 - 1966년
 
  동빈내항의 황포돛배 - 1966년
 
  상도동 현,시외버스터미널 앞 도로개설 - 1966년
 
  육거리 ↔ 소방서간 도로 - 1966년
 

 
  육거리와 시청간 도로 1966년
 
  송도해변에 나타난 미스포항 - 1966년
 
  송도해변에 나타난 미쓰 포항 - 1966년
 
  포항 역전파출소 - 1966년
 
  학산의 모습 (포항고등학교 가는 샛길) - 1966년
 
  서산터널-육거리간 도로 공사 - 1966년
 
  포스코 유치 시민환영대회 - 1967년 10월 3일
 
  포스코단지 기공을 축하하는 시민 - 1967년 10월 3일
 
  포스코 건설부지
 
  육거리 ↔ 서산간 도로 - 1967년
  
  상도동 (현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물푸기 - 1967년
 
  북한규탄 궐기대회 - 1967년
 
  완공 직전의 형산교 모습 - 1967년
  
  제 7회 개항제 축제 1967년
 
  동빈내항 해양수산청 주변 - 1967년
 
  오거리↔ 포항역간 도로 - 1967년
 
   형산교 가설 준공식 - 1967. 11.
 
  포항 MBC 뒤 국도 - 1968년
 
  오거리 모습 - 1968년
 
  등교길 징검다리 놓기 - 1968년
 
  장기면 계원리 해녀 - 1968년
 
  두호동 촌락 - 1968년
 

 
  대도동 사무소 마을 주민회 - 1969년 
  
 구 공설운동장과 죽도1동 사무소 일대 - 1969년
 
  상도동 볍씨종자 소독 - 1969년
 
  포스코 건설 모습 - 1969년
 
  포스코 건설 모습 - 1969년
 
  죽도2동 모내기지원 해병대 병사 - 1969년
 
  고교생 보리베기지원 - 1969년
 
  고교생 벼베기지원 -1969년
 
  양학동 국도변 소달구지 - 1969년
 
  송도로 -1969년

 
  양학동 철로변 일대 - 1969년
 
  득량동 계곡 마을빨래터 - 1969년
 
  상도동, 대도동 일대의 촌락 - 1969년
  
  내항의 미곡수송 장면 - 1969년
  
  송라면 조사리 지하수개발 -1969년
  
  흥해읍 주택가공동우물 - 1969년
 
  대송면 농가 새끼꼬기부업 - 1969년
 
 가마니짜기 부업 - 1969년
 
추곡수매용 가마니 배분 - 1969년
 
  우창동 주택가공터정비 - 1969년
 
  기계면 가안1리 - 1960년대 후반
 
  송라면 대전리 모습 - 1960년대 후반
 
  장기면 두원리 전경 -1960년대 후반
 
  포항제철(포스코) 기공식 - 1970년 4월 1일   자료출처 : 포항시 홈페이지
 
  포항제철(포스코)기공식 -  1970. 4. 1.
 
  불우이웃돕기 절미운동 - 1970년
 
  죽도2동 새마을탁아소 - 1970년
   
  북부시장내 - 1970년
 
  상도동 이동순회진료 -1970년
 
  학산파출소 앞 - 1970년
 
  우체국 자동전화개통 - 1970. 3.
  
  육거리 ↔ 남빈동사거리간 도로 - 1970년
 
  포항 육거리 - 1970년
 
  구룡포 전복치패사업 - 1970년
  
  쥐잡기 캠페인 홍보물 - 1970년
 
  기계면 성계리 지하수개발 -1970년
 
  양학동 새마을 유치원 - 1970년

 
  여중생 보리베기 일손지원 - 1970년
 
  포항여고생 농수로정비 - 1970년

 
  태풍 길다호로 형산강 범람 - 1970. 7. 4
 
  태풍 길다호로 형산강 범람 - 1970. 7. 4.
  
  태풍 길다호로 형산강범람(상대,해도동 주택가) - 1970년 7월 4일
 
  태풍 길다호로 형산강범람(건설중인 포스코) - 1970년 7월 4일
 
  포항역 - 1970년
 
  송도로 보도블럭 공사에 참여한 시민들 -1970년
 
  포항세무서 - 1970년
 
  용흥동 구'시외버스터미널 - 1970년
 
  두호동 동부초등앞 삼거리 - 1970년
 
  장기면 계원리 해안전경, 돌미역 건조 모습 - 1970년대 초 
 
  1회용 비닐우산만들기 부업 - 1970년
 
  두호동 해안마을 전경 - 1970년대 초반
 
  북구 죽장면 입암리 - 1970년대 초반
 
  경주-포항간 국도포장공사 - 1971년 3월
 
  포항공고생 거리행진 - 1971년
 
  조흥은행-포항우체국간 도로공사 - 1971년
 
  포스코 건설을 지켜보고 있는 노인들 - 1971년
 
  남구 연일읍 중단1리 - 1971년
  
  남구 상도동 마을 공동빨래터 -1971년
 
  북구 용흥동 우방 ↔ 기계간 도로 - 1971년
 
  구.종합운동장 기공 - 1971년
 
  포스코 제1고로 건설 - 1972년
 
  포스코 제1고로 완공직전 - 1972년
 
  포스코인들의 출퇴근 길, 형산교 - 1972년
 
  고교생 농촌일손돕기 - 1972년
 
  죽도2동 통일벼못자리 - 1972년
 
 두호동 동부초등학교와 시내 - 1972년
  
  대신동 하수구준설 - 1972년
  
  학산동 철로변정비 - 1972년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1972년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 1972년
 
  항구동일대 -1972년
  
  용흥동 새마을사업 - 1972년
 
  북구 우현동 세화여고주변 - 1972년
 
  용흥동 새마을사업 준공 - 1972년
 
  북구 양학동 뒷골목 새마을사업 착공식 - 1972년
 
  북구 죽도1동 구시민운동장에서 시민체전 - 1972년
 
  포항여중고(좌), 포항중(우) 일대 - 1972년   (학도병 이우근의 일기로 유명한 포항여자중학교)
1939년 포항고등여학교가 세워져 오늘날의 포항여중·고로 이어졌으며, 1943년에는 포항공립중학교가 세워져 현재의 포항중학교로 이어졌다.

 
  포항중학교와 학산동 일대 - 1972년
 
  포항중학교 앞 철로변 정비 1972년
  
  항만청뒤 철길 -1972년
 
  초등학교 5학년 5반 송도해수욕장 소풍 - 1972년
 
  동빈내항 해양수산청 일대 - 1972년   멀리 포항제철소 모습도..
 
  남구 대도동 공동못자리 - 1973년
 
  해양수산청 부근 - 1973년
  
  동빈골목 하수구 부역 - 1973년
  
  북구 학산동주택가 마을부역 - 1973년
  
  상도동 군장병 벼베기지원 - 1973년
 
  탑산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 1973년
 
  포항 북구 오거리 시민탑 - 1974년
 
  오거리↔포스코간 확포장 - 1974년
 
  포항 시청앞 새마을조기청소 - 1974년
 
  북구 우창동 연탄공장 - 1974년
 
  남구 오천읍 세게리 청소년들 아침체조 - 1974년
  
  북구 환여동 방파제 정비에 나선 주부들 - 1974년
 
  송도해수욕장의 전성기 - 1974년
 
  포스코 완공 및 가동 - 1974년
 
  영일군민체육대회 - 1974년
 
  도민체전 - 1974년
 
  시민체전에 출전한 노인들 - 1974년
 
 육거리 추계대청소대회 - 1974년
 
  흥해읍 달전리 소티재 모습 - 1970년대 중반
 
  북구 두호동 북부해수욕장 일대 - 1975년
 
  상도동 소하천 정비 - 1975년
 
  광복30주념기념 시민체전 - 1975년
 
  죽천초등에서의 마을전기 점등식 - 1975년
 
  동대병원-형산로타리 - 1975년
 
  포항역전 - 1975년
 
   남구 송도해수욕장 - 1975년
 
  송도해수욕장 다이빙대 - 1975년
 
  송도해수욕장 - 1976년 7월 31일,  개장이래 최대인파 기록 12만명 돌파   
  

  북부해수욕장 - 1976년
※ 년도 및 계절 순으로 배열하면 뒷쪽이지만 75년도 송도해수욕장과 연계함.

 
  북구 죽도어시장-죽도1동 - 1976년
  
  북구 나루끝-문화원간 도로 - 1976년
 
  남구 해도동 농한기 객토사업 - 1976년
 
  북구 죽도2동 초등학생 보리밟기 - 1976년
 
  주부 보리밟기 지원 - 1976년
 
   남구 상도동 보리밟기 - 1976년
 
   국민은행↔용흥동간 도로포장 - 1976년
 
  포항-울룽도간 쾌속선 취항 - 1977년 7월
  
  북구 장성동 등교길 - 1977년
 
  자연보호 시민궐기대회(육거리) - 1977년
 
  두호동 동부초등앞 도로정비 - 1977년
 
  송도교 일대 - 1977년
 
  신형산교 가설공사 모습 - 1977년
 
 
  신형산교 개통 - 1978년
 
  남구 대잠동 일대 - 1978년
  
  포항↔흥해간 소티재 - 1978년
 
  포항 의료원 - 1978년
 
  해도 형산강변 자전거전용도로 -1978년
 
  포항오거리 - 1978년
 
  58년도에 가설된 송도교는 헐고, 재가설된 송도교 준공 - 1978년
 
  타자 경연대회 - 1978년
  
  오광장↔동대병원간 도로공사 - 1979년
 
   남빈사거리-오거리간 도로 - 1979년
 
  시승격30주년 기념체육대회 - 1979년
 
  1970년대말~80년 초 인파로 넘쳐났던 송도해수욕장 모습. 포항시 제공
<한겨레 2007년 기사 중>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19843.html
30여년전 경북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인기를 끌었던 포항 송도해수욕장이 문을 닫는다.
포항시 남구 송도동에 위치한 송도해수욕장은 방품림으로 조성된 측백나무·해송 등의 울창한 숲과 길이 1.3㎞, 폭 50∼70m의 은빛 백사장, 적당한 수온으로 포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최근들어 태풍 등으로 모래가 유실돼 백사장 폭이 10∼40m로 줄어들고 각종 개발까지 겹쳐 사실상 해수욕장 기능을 상실했다. 송도해수욕장은 1976년 7월31일 개장 이후 가장 많을 때는 12만명이 찾기도 했으나 지난해 개장기간에는 고작 4천여명만이 찾아 피서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해수욕장 주변에 난립해 있던 200여개 횟집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송도해수욕장 백사장 복원계획 2012년 착공, 2016년까지...)

  
  북구 용흥동 쌍용아파트앞도로 - 1980년
  
  북구 남부초등앞 우회도로 - 1980년
  
  용흥동 우회고가교 - 1980년
 
  시가지우회로 - 1980년
 

     
번호     글 제 목 번호     글 제 목 번호     글 제 목 번호     글 제 목
55 석천마을 벽화 작업
54 (사진)2018년 5월 5일 조선통신사 가장행렬 행사
53 수사공할아버지 단소 고산제
52 충숙공기념사업회 2018년도 정기총회 개최
51 2018. 2. 25. 울산 문화공원내 충숙공동상 참배
50 울산 옥동∼농소 신설 도로명 '이예로'
49 2017.11.19. 문중묘제 봉행
48 유허비 및 헌성비 등 설치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47 사진으로 보는 포항의 변천사
46 안압지의 연꽃
45 선영 이장 및 단장
44 이채익의원 헌정대상 수상
43 재경화수회 정기총회(2017.6.10 토요일 오전 11시
42 울산중구 몬화공원내의 충숙공동상 야경
41 충숙공이예기념사업회 홈화면 사진
40 석계서원 도서(소설,동화) 봉정식(2012.1.15)
39 Re..천룡사 법요식 참석을 위한 일본 교토 방문
38 Re..천룡사 법요식 참석을 위한 일본 교토 방문
37 Re..천룡사 법요식 참석을 위한 일본 교토 방문
36 태화강 소경~~
35 울산 들꽃학습원에서
34 약수문회 화전
33 이휴정 낙성식(재축)
32 석계서원
31 석계서원
30 덕봉재
29 덕봉재
28 학청회 모임
27 덕봉산 직겸할아버지 묘소(2006.11.26) [190]
26 일본대마도 충숙공할아버지 공적비
25 충숙공할아버지 동상(울산광역시 문화공원내)
24 충숙공 이예 동상 (설명글) [326]
23 충숙공 이예 동상 제막식 동상사진2 [165]
22 충숙공 이예 동상 제막식 동상사진3
21 충숙공 이예 동상 제막식 동상사진4
20 태암정정자 [32767]
19 泰巖亭記 [16516]
18 泰巖亭의 銘이다. 아울러 小序를 붙인다.
17 泰巖亭에 대하여 삼가 題하고 아울러 서문을 쓰다. [6733]
16 삼가 泰巖亭에 시를 짓다.
15 삼가 泰巖亭 韻에 次韻하다 [24513]
14 삼가 泰巖亭 韻에 차운하다. [6978]
13 2005년 여름의 애일당과 백일홍
12 2005년 여름의 태암정과 백일홍 [5]
11 충숙공에 관한 학술강연회 및 출판기념회
10 충숙공 할아버지 영정
9 용연서원에 봉안된 충숙공 영정
8 용연서원 봉안식에 참석한 일문들 [1]
7 석계서원 상충사 영정 봉안식 및 對馬市長 방문
6 울산 남구청장 울주군수 대마도시장 문화교류협정 조인식 [1472]
5 1924년 석계경수당 전경 [1678]
4 석계정사 [1226]
3 태암정 [1]
2 덕봉재 [1815]
1 유적지 탐방 - 대마도를 다녀와서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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