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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발자취

 a pilgrimage
사적지순례  
작성자 이두병
작성일 2009-09-27 (일) 19:02
분 류 질문
https://goo.gl/2r9Tga
ㆍ추천: 0  ㆍ조회: 4273    
IP: 121.xxx.24
소실 4년만에 제 모습 찾은 울산 문화재자료 1호
 
 
 
울산도호부 객사 학성관의 남문 누각
학성이씨 월진문회 매수 현위치 이전
태화루 현판·조선시대 의복 등 보관


지난 20일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이휴정의 복원 낙성식이 열렸다.

남구 신정동에서 열린 낙성식에는 박맹우 시장, 김철욱 시의회 의장 등 울산의 많은 유지들이 참석했다.

이휴정은 학성이씨 월진문회의 정각인데, 지난 2003년 9월 불이 나 소실됐다가 이번에 4억6000만원으로 복원됐다. 그런데 왜 남의 문중 정각을 복원하는데 울산시가 돈을 대고 울산의 유지들이 대거 참석했을까.

이휴정에는 울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보전하기 위해 이휴정은 이전에도 몇번이나 중수를 거듭했다.

이휴정은 원래 울산도호부의 객사였던 학성관(鶴城館)의 남문루(南門樓)였다. 학성관은 지금의 울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고, 남문루는 교문 근처에 있었는데, 이 남문루에는 원래 '太和樓(태화루)'라는 현판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 태화루 현판 역시 지금의 로얄예식장 자리에 있었던 태화루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울산초등학교(당시 울산공립보통학교) 교정을 확장하면서 남문루가 헐리게 되자 학성이씨 월진문회에서 사들여 현재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학성이씨 월진문회는 이 때 월진파의 정각(亭閣)이었던 '二休亭(이휴정)'이란 현판을 태화루 대신 달고 건물도 정자형식으로 일부 고쳤다. 태화루 현판은 그대로 소장하고 있다.

울산도호부는 지금의 동헌을 말하는 것으로, 울산읍성 안에 있었다. 울산읍성은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인데, 규모는 중구 북정동, 옥교동, 성남동, 교동 일원을 아우르는 크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울산왜성(현 학성공원)을 축조하는데 성돌을 갖다 쓰면서 사라지게 됐다.

중구청의 '울산읍성 4대 성문 복원계획 수립을 위한 학술용역보고회'자료 등에 따르면 성 안에는 20여개의 관청과 8곳의 우물, 4대문, 그리고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십자형 도로가 있었다. 동헌을 중심으로 입구쪽에는 가학루, 뒤에는 오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남쪽에는 사또를 보좌하는 지방양반들이 기거하는 향사당이, 서쪽의 현 양사초등학교 자리에는 교육을 담당하는 양사재와 군관청, 토포청 등이 있었다. 동쪽으로는 현 울산초등학교 자리에 '학성관(鶴城館)'이라는 객사가 있었다.

읍성에서 가장 중요한 관청은 동헌과 객사였다. 수령이 행정사무를 보는 곳이 동헌이었다면 객사인 학성관은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 음력 설날, 동지, 왕의 생일 등에 지방관이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 학성관의 정문인 남문루를 옮겨와 새로 지은 것이 바로 지금의 이휴정인 것이다.

당시 남문루는 중층의 누각으로 아래층에서는 출입이 이뤄지고 2층은 개방된 마루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층이 낮아져서 출입이 안되고 2층은 중앙에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둔 모습으로 변했다. 문루(門樓)형식에서 정자형식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휴정은 건물 그 자체도 중요한 문화재이지만 거기에 보관돼 있는 의복과 태화루 현판도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태화루 현판은 울산시가 현 로얄예식장 일원에 복원을 추진 중인 태화루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화루는 영남 3루 중의 하나로 꼽힐만큼 훌륭한 풍광을 자랑하는 누각이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이 태화루는 없어지게 됐으며, 1831(순조 31)년에는 태화루 현판이 학성관 남문으로 옮겨져 걸리게 됐고 한다.

그러나 이 현판이 당시 서거정이 썼다는 현판인지는 알 수 없다는 주장도 있어 흥미롭다.

시는 올해 토지 보상을 완료하고 오는 2011년까지 태화루 복원사업을 마무리짓는다는 방침이다.

이휴정에 보관돼 있는 의복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37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중기에 봉직랑을 지낸 이천기 및 그의 부인 흥려박씨의 합장묘와 이천기의 셋째 아들인 이지영 및 그의 부인 평해황씨의 합장묘에서 나온 것들이다. 1969년 여름 지금의 학성고등학교 부지 조성을 위해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됐다. 출토된 유물은 광다회대(廣多繪帶) 1점, 면포솜 소모자 1점, 명주솜 누비치마 1점, 면포 홑치마 1점 등 모두 10점이다.

이들은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초까지의 양반층 복식을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당시 묘를 서면서 석고로 관의 둘레를 밀폐시켜놓았기 때문에 300년이 지났는데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현재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기탁보관돼 있으며, 이휴정에는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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